찌질한 위인전, 함현식, 위즈덤하우스. 난 구글북스에서 구매. 딴지마켓에서 구매하면 저자 사인을 해준단다.
딴지일보에 연재된 기사를 다듬어서 책으로 냈는데, 확실히 글의 퀄리티는 책이 더 좋다.
책 제목부터 무슨 내용인지, 작가가 전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다, 이 아이디어가 그렇게 신선하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좀 뻔한 맛이 있다. 특히 열성 기독교인이었던 나로서는 이건 너무나 진부한 교훈. 그러나 회개하고 새사람이 된 삭개오의 얘기나 평생 간질을 달고 살았던 바울의 이야기, 한 때는 예수님을 전면으로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이런 류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이다. 우리에겐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여기에는 적절한 위로가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찌질한 위인전에는 특히나 다양한 타입의 위인들을 모아놓아서 MBTI 16개 유형은 아닐지라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가진 위인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되었는지 한 번 쯤 볼만하다.
1. 시인으로 살기 위해 자기를 고발한 남자, 김수영
2. '의존'함으로써 '생존'했던 화가, 빈센트 고흐
3. 철업는 가난뱅이, 이중섭
4. 완전한 사랑을 꿈꾼 남자, 리처드 파인만
5. 천재에서 괴물이 된 아웃사이더, 허균
외전 1 : 자기 안의 혼돈을 이기지 못한 악마, 파울 괴벨스
6. 평화주의에 가려진 보수주의자, 마하트마 간디
7. 관계의 파괴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8. 감오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은 무기수, 넬슨 만델라
9. 좌절과 도취를 반복했던 인격장애자, 스티븐 잡스
외전 2 : 비루한 요정,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상 위인 목록 중 가장 마지막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작가에게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위인이다. 그리고 첫 위인인 김수영은 이 책의 실질적인 프롤로그에 해당된다.
자, 누가 나와 같은 단점을 가지고 있나? 웃기게도 찾아보면 모두 다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같다. 순간의 외로움과 감정적 메마름에 허덕이면서도 자아실현의 욕구는 충만했던건 고흐와 닮았고, 세상 모르고 살아왔떤 건 이중섭같다. 낭만을 꿈꾸었지만 결국 허무한 자기만족이었나 싶은 건 파인만과 닮았고, 중압감에 못이겨 끝내 지키려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린 건 허균과 같다. 진보를 외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보수적이고 야만적이었던 나를 발견한 경험은 간디와 허밍웨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상적 목표를 위해 현실에서 수많은 타협을 했었던건 만델라와 닮았고, 나의 독선은 스티븐잡스에 비할 바 충분히 된다.
이렇듯 내가 가진 단점을 다 가지고 있는 이 사람들은, 그런데 위인들이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힘들었다고 생각하니 위인이 더 위인처럼 보이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 한 명을 그래도 뽑자면 역시 빈센트 고흐.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어서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걸 견디기 어려워했다. 거절당한 후에는 당사자를 협박하고, 자기 자신을 자해하고, 그렇게 정신이 온전히 붙어 있지 못했다. 당시 유명한 화가이자 그의 잠깐 스승이었던 고갱이 그의 이상한 성격을 못 견디고 떠나려 하자, 칼로 그를 위협하다 정작 그 칼로 자기 귀를 자른 사건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귀 자른 자화상의 전말이다. 그는 권총 자살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딱히 처음부터 죽을 목적이라기보다, 자신에 대한 징벌의 의미로 복부를 권총으로 쏜 것이다.
그는 돈을 못 벌어서 항상 잘나가는 화가인 동생 테오에게 빌어먹어야 했는데, 문제는 돈을 그림 용구를 구입하는데만 쓴 것이 아니라 창녀들에게도 썼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네이트 판에라도 올라간다면 인간 말종 개쓰레기 취급을 당할테고, 그런 평가도 사실 당연하다. 이 책의 묘미는 전혀 미화할 수 없는 단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도저히 쉴드가 안 되는 치명적 인생의 잘못이 당신에게는 없다는 말인가? 또, 그런데 그것이 당신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겠는가?
본문 내용을 발췌해본다.
"자기 파멸에 대항하는 그의 투쟁이 빈센트에게 위대한 화가로서의 활동을 촉발했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의 이름은 빈센트. '빈센트 빌렘 반 고흐'박사. 테오의 아들이자 빈센트 반 고흐의 대자였던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데다가 정신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했떤 빈센트 반 고흐. 정신 착란과 자해를 반복했던, 죽고 나서야 인정받은 위대한 예술가.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할 때마다, 그래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괴로워햇던 빈센트 반 고흐. 평생에 걸친 자신의 광기와의 처절한 투쟁. 어쩌면, 우리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하지만 어쨌든 고흐는 한 평생 동생 등쳐먹고 살았던 쓰레기. 하지만 위대한 작품을 남긴 화가. ㅎㅎㅎ 내가 너무 냉정한 건가.
아무래도 인터넷 연재글인 만큼, 그리고 글의 구조가 뻔한 만큼, 앞부분에 파워가 많이 실리고 뒤쪽으로 갈 수록, 읽으면 읽을 수록, 힘이 좀 떨어지고 지루해지는 느낌이 있다. 특히 스티븐잡스는 그냥 자서전을 옮긴 수준이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부분은 누구나 공감할 수는 없을법한 개인의 감상과 감동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각 인물의 에피소드는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하고, 교훈은 뻔하지만 감동도 뻔한 건 아니다. 강추..까지는 아니고 살짝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