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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엔지니어를 위한 조언

나는 전문 엔지니어는 아니고 어디서 제대로 배운 적도 없지만 나름 집에서 작곡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교회에서 굴러다닌 통밥도 있고 해서 몇 가지 적어본다.

교회에서 음향을 맡은 사람이 프로일 수도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또 아무 것도 모른 채로 그냥 지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100석 미만의 교회에서 그렇다. 그래서 이렇게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것들을 적어본다.

시스템마다 컨트롤하는 방법은 다 다르니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음향 엔지니어를 맡은 사람이 최소한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흥미를 좀 가져보라는 취지에서 작성한다.

나도 뭐 아마추어니까 어려운 얘기는 없다.
자 이제 글로 배울 준비가 되었는가?


음향은 정말 중요하다


음향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이따금씩 대형 집회를 일부러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TV만 보다가 가끔 영화관에 가는 것과 똑같다. 규모에서 오는 황홀감이란 실존하는 것이며, 좋게 해석하면 규모 자체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도구로 쓰신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어떻게든 음정만 맞고 소리만 나고 가사만 들린다면 다 은혜받는 게 아니다. 회중이 편안하게 찬양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찬양이 정말 아름답게 들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음악은 정말 중요하다, 트로트 뽕짝에 가사만 시편을 입힌다고 그게 어떻게 은혜가 되겠는가. 드럼은 딱딱하고 보컬은 울림이 없고 소리는 맹맹한데 은혜가 되겠는가 말이다.

규모가 무조건 크다고 은혜로운 것도 아니다. 골방에 세명 다섯명 모여서 기타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큰 규모의 교회는 알아서들 음향을 잘 다룰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소규모의 교회이다. 이런 저런 악기들은 다 갖췄는데 제각각 따로 놀면 곤란하다. 밴드 음악은 악기가 모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조화롭게 묶어 줄 엔지니어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전체 시스템


일단 전체 음향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원 소스 -> 믹서 -> 이펙터->다시 믹서->이퀄라이저->앰프 -> 스피커

대강 이런 식인데 이펙터를 통과한 신호가 바로 앰프로 가는 것은 아니고, 이펙터에서 나온 신호를 믹서가 다시 받아들인 뒤, 원래 신호와 이펙트 거친 신호 둘을 섞어서 앰프로 보낸다. 그리고 앰프 앞단에는 이퀼라이저가 있다... 이 부분은 시스템마다 다르고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

믹서는 모든 소리를 다 합치는 역할을 한다. 앰프는 신호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신호를 왜 키우는가? 마이크에서 공기의 진동이나, 일렉기타에 달린 영구자석에 의해 만들어진 아주 미약한 전기가 사람 귀에 빵빵 울리는 큰 소리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신호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데 이것을 앰플리파이어(앰프)라고 한다.

최초 음원 소스는 너무 크기가 작으므로 믹서에서 다루기 곤란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다루기 쉬운 정도로 크기를 키우는 것이 프리앰프의 역할이다. 믹서에 보면 GAIN도 있고 불륨슬라이더도 있는데, 둘다 결론적으로는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GAIN은 프리앰프의 역할이고, 불륨슬라이더가 믹서의 역할이다.

이렇게 해서 다 소리가 모이면 스피커에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크기로 에너지를 키우는 것이 메인 앰프의 역할이다. 전류가 커지면 그 큰 전류에 의해 스피커가 전기신호를 운동에너지로 바꾸고 그 운동에 의해 공기가 진동되면서 소리가 전달된다.



리버브


이펙터는 매우 중요한데, 필수적으로 쓰는 두 가지 이펙터가 있다 - 리버브, 컴프레서. 필수 중의 필수로 꼽히는 이펙터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쌩소리를 듣고 있고, 익숙해지니 상관없다는 식이다.

 리버브가 어떤 효과를 주는지 다음 링크를 참고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XNx_ib--y2w#t=3m0s

상당히 유명한 찬양인데, 25초동안 충분히 들어보고 그 뒤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느껴보자. 3분 25초 근처에서 갑자기 가수가 내 앞에 나타난 것 같다. 큰 공간에서 멀리 울려퍼지던 찬양에서 갑자기 단 둘이 마주앉아 조용히 부르는 찬양으로 바뀌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73Tm7J5g_Y#t=1m0s

이 곡은 자우림의 Mother Angel이란 곡이다. 찬양은 아니지만 가사는 좋은데, 어쨌든 가사는 아래와 같다.

그대 걸음이 힘겨워 질 때는
내가 그 곁에 (내가 그곁에) 함께 걸어 가요

여기서 괄호안에 있는 (내가 그 곁에) 여기 부분이 바로 오른쪽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효과를 만드는 것이 바로 리버브이다. (물론 패닝-소리가 오른쪽에서 나는 효과도 있긴 하다.) 메인 소리는 리버브가 충분하지만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리버브가 없다. 즉 공간감이 안 느껴지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리버브가 걸렸다는 것도 눈치채기 힘들다. 반주 음악이랑 섞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리버브를 뺀 것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마이크로 받은 신호를 그대로 출력하면 말하는 사람 입이 내 귀에 닿은 것처럼 느껴진다. 보통 사람이 마이크에 입을 붙여놓고 뽀뽀를 하면서 말하므로 이걸 그대로 들으면 내 귀에 뽀뽀를 하는 것과 같다.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동굴이나 큰 강당, 목욕탕처럼 울림이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리버브이다.

우리의 사운드는 반드시 적당한 리버브를 줘야 한다. 교회가 하두 울림이 쎄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쩡쩡 울린다면 리버브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울림이 없다면 리버브를 줘서 만들어야 한다.

리버브의 양은 상황에 따라 다른데, 찬양을 하는 경우에는 충분히 많이 줄 필요가 있다. 싱어 뿐 아니라 모든 악기들이 적당한 량의 리버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기간에 소리가 잘 섞이지 않고 너무 분리되서 듣는 기분이 들 것이다. 특히 드럼은 충분한 울림이 있어야 한다. 마이크를 댈 수 없다면 튜닝이라도 잘 해서 울림이 길게 나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레코딩된 찬양을 듣고 리버브가 없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드럼만 쳤을 때 큰 울림을 듣고 당황하여 뮤트 패드를 잔뜩 붙인다. 보컬에도 리버브가 들어가면 부담스러워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울림이 없는 사운드들이 합쳐지면 소리가 섞이지 않는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풍부한 울림의 사운드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의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자신감있고 과감하게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서로 리버브의 양이 다르면 소리가 분리된다. 두 개의 같은 소리가 같은 방향에서 나는데 리버브가 다르면 인간의 뇌는 두 소리를 구분해서 듣는다. 3차원적으로 거리가 다른 것을 인식해버리는 것이다. 만약 여러 소리가 너무 뭉쳐서 구별이 안 된다면 이  효과를 활용해서 각각의 리버브를 조절해보자. 반대로 너무 구별이 잘 되서 섞이지 않는다면 많은 양의 리버브를 먹여보자.

목회자의 설교나 일반적인 스피치는 매우 작은 리버브를 준다. 교회에 어느 정도 울림이 있다면 아예 안 줘도 된다. 찬양하던 마이크로 갑자기 조용하게 기도를 하거나 멘트를 날릴 때는 리버브를 후딱 줄여줘야 한다.

리버브가 없다가 갑자기 생기면 이전과는 아예 다른 소리에 당황할 수도 있다. 매번 예배마다 조금씩 양을 늘려보고 적절한 수준을 찾아보자.

다음 동영상도 참고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6XZt2va6uLc


컴프레서


컴프레서와 비슷한 것으로 리미터가 있다. 근본적으로 다 똑같은 것이다. 이게 무엇인고 하니 작은 소리를 크게 하고 큰 소리는 원래 크게 두는 것이다. 혹은 작은 소리는 그냥 작게 두고 큰 소리는 작게 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큰 소리와 작은 소리의 편차를 줄여준다.

유튜브나 아프리카 방송 듣다 보면 어떤 BJ는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시끄러울 때가 있다. 실제로 사람의 목소리는 작은 소리와 큰 소리의 편차가 크다. 그런데 이 차이를 그대로 녹음해서 스피커로 들으면 실제로 들을 때와 느낌이 다르다. 스피커로 출력할 때는 이 차이를 줄여줘야 한다. 목사님이 작게 말할 때랑 크게 말할 때랑 너무 편차가 크다면 컴프레서를 적용해보자. 컴프레서를 너무 빡빡하게 적용하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큰 소리가 안나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느 정도의 다이내믹한 맛은 있도록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해보자. 노래하는 보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컴프레싱이 없으면 마이크와 입술과의 거리도 시시각각 변하고 호흡도 제멋대로이고 해서 소리가 영 좋지 못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테크닉이 부족한 경우 컴프레서로 보완해줄 수 있다. 아래 동영상을 참고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mc70FKwQXnc

다이내믹이란 말은 공식적으로 쓰는 말이다. 작은 소리와 큰 소리간의 편차가 크면 다이내믹이 크다고 한다. 다이내믹이 크다면 - 음악에서 작은 소리와 큰 소리의 편차가 크다면 음질이 좋은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mp3나 음원으로 듣는 음악에서 다이내믹스를 키우려면 문제가 있다. 큰 소리를 더 크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작은 소리를 더 작게 해서 다이내믹을 늘릴 수 있는데, 그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불륨이 작아지게 된다. 이 때, 불륨이 작으면 사람들이 음질이 낮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불륨을 키우려니 컴프레서를 빡빡하게 먹여서 다이내믹스를 줄인다. 불륨이 크니 음질이 좋은 줄 착각하겠지만 사실은 원래 소리가 가지고 있는 다이내믹스가 다 사라졌으니 실제로는 음질이 나빠진 셈이다. 사람 목소리야 그렇다 쳐도 음악이나 악기 소리에 컴프레서를 먹이면 아예 소리 자체가 다르게 들린다. '음량전쟁'으로 검색해보면 잘 나올 것이다.

교회에서 라이브로 듣는 음질이랑 레코딩으로 듣는 음질이랑 비교해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이 '음량전쟁'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레코딩된 음악은 너무 컴프레싱을 세게 하기 때문에 라이브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웃기는 점은 우리의 귀가 레코딩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라이브 음질이 안 좋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레코딩 음반을 만들 때는 여러 악기가 두 개의 트랙(좌우 스테레오)로 섞여서 담기니 소리가 뭉개지고 선명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소리를 선명하게 만들고 개별 악기가 분리되서 잘 들리게 하기 위해 아주 용을 쓴다. 반대로 라이브는 너무 선명해서 문제다. 다이내믹이 무한대에 가깝고 개별 악기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다보니 합쳐지질 않는다.

교회 악기 소리가 CCM 음반으로 듣는 소리와 뭔가 다르다고 느껴진다면 그 원인의 큰 부분은 컴프레싱에 있다. 특히 드럼은 본래 가진 다이내믹이 엄청 크기 때문에 녹음하면서 다이내믹이 큰 폭으로 잘려나간다. 드럼에 컴프레서를 먹이면 소리가 더 부드러워지고 뻑뻑해진달까? 그런 느낌이 난다. 컴프레싱을 엄청나게 많이 주면 뿡뿡두둠칫거리는 전자드럼 소리처럼 변해버린다. 우리 교회 드럼 소리가 찬양 앨범의 소리와 다르다고 애꿎은 드럼을 탓하지 말자. 생소리로 들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생소리가 더 좋은 소리이다.



좌우 패닝


보통 믹서에 PAN이라고 써 있다. 소리를 좌측 혹은 우측으로 치우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인 악기나 마이크의 입력은 모노, 즉 하나의 소리인데 우리가 듣는 음악은 스테레오, 즉 좌우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다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QSCvJEnHEo#t=4m33s
https://www.youtube.com/watch?v=RQSCvJEnHEo#t=12m48s

위의 비디오는 모노 피아노와 스테레오 피아노를 비교한 것이다. 엄청난 공간감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스테레오 출력을 지원하는 악기가 있다면 이것은 무조건 스테레오로 받아줘야 한다. 메인 건반에 꽂히는 잭은 반드시 두 개여야 한다.

마이크나 기타 등 대부분의 악기는 모노 출력이다. 이것들을 전부다 가운데에 두고 PAN을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매우 심심할 뿐 아니라 공간감도 생동감도 없고, 때로는 소리가 죄다 뭉개지게 된다. 이러한 악기들을 적절히 좌우로 배치하면 공간감이 살아난다.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 일단 메인 피아노는 스테레오 상태 그대로 가운데에 둔다. 인도자 마이크도 정가운데에 둔다. 기타는 좌우 한쪽으로 몬다. 보통 가장 왼쪽 혹은 가장 오른쪽 끝에 기타가 있다. 기타가 두 대라면 극단적으로 양 끝에 두 개를 배치할 수도 있다. 근데 인도자가 기타를 메고 있는 경우에는 가운데 두기도 한다. 눈으로 보면 가운데 있는 소리가 왼쪽 끝에서 나면 조금 어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싱어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로 벌리되, 절대 같은 위치를 두지 않고 미세하게 다르게 둔다. 그렇게 하면 각 싱어의 소리가 분리되어 살아난다. 그런데 너무 조화가 안 되는 것 같다 싶으면 하나의 위치로 뭉쳐두는 것도 방법이다. 베이스기타는 무조건 가운데이다. 드럼은 마이킹이 된다면 킥과 스네어는 가운데에 두고 나머지를 좌우로 넓게 배치한다. 마이킹이 안 되면 그냥 어쩔 수 없는데, 이 때 베이스기타를 중앙에 두지 않고 드럼과 같은 위치에 두면 묘하게 밸런스가 맞는 경우도 있다. 신디사이저는 어쩔까? 스테레오 출력이 지원된다면 스테레오로 받은 뒤에 좌우 밸런스는 연주자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타와 같은 취급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위치와 청각적으로 들리는 위치가 일치해야 부자연스러움이 없다. 눈을 감고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 것 같은지 느껴보자.

레코딩된 음악은 좌우의 밸런스가 완전히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예배의 악기로서는 그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울 수도 있다. 드럼 생소리가 섞이고 악기도 몇 개 없는데 좌우 밸런스를 어떻게 다 맞춘단 말인가. 오른쪽에서는 드럼소리가 나고 왼쪽에서는 싱어 목소리가 날 수도 있다. 좌우로 완전 대칭이 아니어도 괜찮다. 옛날 재즈 음악이나 소품 음악을 들어보면 밸런스가 깨져도 충분히 듣기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

한 가지 명심할 사항, 일반적인 상황에서 소리는 모두 양쪽 귀로 듣는다. 왼쪽에서 나는 소리는 오른쪽 귀로도 작게나마 듣는다. 만약 소리가 완전히 한쪽 귀에서만 들린다면 그것은 귓속말을 하는 것과 같이 부자연스럽다. 그러므로 팬을 너무 한쪽으로만 돌리지 말고 적절히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로 벌려줘야 한다.


주파수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주파수를 지배하는 자가 음향을 지배한다! 소리는 진동이다. 진동은 종파와 횡파로 나뉘는데 빨래줄을 위아래로 흔들면 횡파이고, 장풍으로 공기를 밀어내면 종파이다. 소리는 종파에 속한다. 공기를 장풍 따위로 밀면 밀도가 높은 부분(밀)과 밀도가 낮은 부분(소)이 생긴다. 이것이 밀소밀소밀소 이렇게 반복되면서 소리가 된다. 1초에 밀소가 몇 번 반복되는가? 이것이 주파수의 단위 Hz이다. 60Hz는 1초에 60번 반복이다.

지진에도 주파수가 있다. 지면이 우르르 떨리면 그것도 1초에 몇 번 떨리는지 측정할 수 있는데, 10Hz정도면 엄청 진동수가 높은 것이다. 땅이 떨리면 그에 따라 공기도 같이 떨리는데, 만약 그 소리를 사람이 들을 수 있다면 엄청 시끄럽겠지만 그 정도 저주파수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충격일 뿐이고 사람이 들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소리라고 칭하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는 보통 20Hz~20,000Hz 로 잡는다. 근데 16,000Hz 이상이 되면 거의 듣는 사람이 없어진다.

스마트폰 앱 중에 주파수에 따라 소리를 들려주는 앱이 있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luxdelux.frequencygenerator&hl=en_US

아니면 여기 웹 페이지를 참고해보자 

https://www.szynalski.com/tone-generator/

여기서 가청주파수를 테스트해볼 수 있다. 근데 일단 당신의 스피커가 문제가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 일반적인 스피커는 가청주파수 이외의 소리를 못 낼 뿐 아니라 주파수별로 음량도 균일하지 않다.

진동이 빠를 수록 높은 소리가 나고 진동이 느릴 수록 낮은 소리가 난다. 현대 음악은 A4 음역을 440Hz로 잡는다. A4는 말하자면 낮은 라 음이다. 높은 라는 880Hz로 두배이다. 그보다 한 옥타브 높으면 1760Hz이다. 우리가 보통 악보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음을 주파수로 옮기면 제일 낮은 음은 약 40Hz (베이스 기타 가장 낮은 E1이 41.20Hz) 가장 높은 음은 6000Hz, 좀 높게 치면 8000Hz 정도 된다 그 이상 올라가면 음이 아니라 지지직 하는 소리로 들린다.

이퀼라이저라는 장치가 있다. 특정 주파수의 소리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것이다. 만약 440Hz를 완전히 줄이면 라 음은 아예 안 들리게 되는 것일까? 이퀼라이저를 특정 음 높이를 안 들리게 하려고 쓰는 걸까? 그런 건 아니다. 피아노로 라를 치면 정확히 440Hz의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파수의 소리가 섞여 있다. 440Hz의 두배인 880Hz, 그리고 그 중간인 660Hz, 등등등, 여러 주파수의 소리가 각각의 크기대로 섞여 있는데, 그 중에서도 440Hz가 도드라지게 크기 때문에 사람이 들을 때는 '라' 음으로 듣는 것이다. 나머지 주파수들은 텍스쳐, 즉 소리의 음질 혹은 성격을 담당하게 된다. 화장실 문을 쾅쾅쾅 두드려보자. 거기에도 주파수가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니까 당연히 진동일 것이고, 진동이라면 주파수가 있을 것 아니냐. 그런데 딱히.. 도레미파솔라시도 중 어디라고 하기 쉽지 않다. 아주 다양한 주파수가 섞여 있고, 그 중에 도드라지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특정한 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드럼은 어떤가? 그나마 드럼 소리는 민감하게 들어보면 음이 확실히 있다. 물론 그 음이 다른 멜로디 악기마냥 명확하지는 않을 뿐이다.

이제 이퀼라이저에 대해 다시 얘기해보자. 이퀼라이저는 각 주파수별로 소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근데 왜 이름이 이퀼라이저인가? 스피커의 특성이나, 소리가 울리는 공간에 따라 특정 주파수가 증폭되기도 하고 감쇄되기도 하는데 이것을 보정해서 전체적으로 평평하게 맞춰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이어폰은 저음이 잘 안들린다, 그건 이어폰 자체의 특성이다. 모든 스피커는 주파수 특성이 있어서 고르게 출력이 잘 안 된다. 그럼 그걸 이퀼라이저로 맞춰줄 수 있다. 저음이 잘 안 들릴 때, 음원 소스 단계에서부터 저음을 크게 해주면 스피커를 거치고 나서 밸런스가 맞게 된다.

소리가 울려퍼지는 공간에도 특징이 있다. 보통 벽이 돌로 되어 있으면 저음이 왕왕 울리게 된다. 그리고 특정한 주파수에서 공명이 일어나게 된다. 드럼을 예로 들어보자. 드럼을 땅 때리면 특정 음이 들리는데, 이것은 드럼내부의 공간의 크기와 드럼 피의 텐션과 여러 요인들이 합쳐져서 특정한 주파수의 진동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를 큰 드럼이라고 생각해보면 분명 이 공간에도 특정한 주파수에 대한 공명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파수는 미리 이퀼라이저로 깎아내려줄 필요가 있다.

하울링이란 무엇인가? 스피커로 나간 소리가 다시 마이크로 들어가고 그 소리가 다시 스피커로 나가면서 소리가 돌고 돌아서 점점 커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하울링이 모든 주파수에 대해 일어나지 않는다. 하울링은 보통 삐~~~ 하거나 우우웅~~ 하거나 한다. 그게 바로 하울링이 일어나는 주파수이다. 보통 앞서 말한대로 공간의 특성이나 스피커의 특성, 혹은 마이크의 특성에 따라 그 주파수가 결정된다. 하울링이 일어나는 주파수는 반드시 이퀼라이저로 잡아줘야 한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서 개념을 잡아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NQ2F_HSSRtI


사람의 귀에도 공간이 있어서 이 공간에서 공명이 일어난다. 보통 사람의 귀는 1kHz~4KHz 대역의 소리를 증폭시킨다. 그래서 이 음역대가 증폭되면 귀가 무진장 아프다. 콰콰콰~~ 이런 느낌이랄까. 하여튼 뭔가 통증이라고 느낄 정도로 귀가 아프다 싶으면 여기 음역대를 줄여보자.

소리가 명료하게 들리지 않는다거나 멍멍하다 싶으면 보통 중역대가 손실된 것이다. 300Hz에서 1000Hz 사이를 잘 만져보면 답이 있을 것이다.

소리가 옹알옹알대고 몽몽하다면 중고역대를 올려야 한다. 1kHz~5kHz를 보강해보자.

답답하다, 멀리 퍼지는 느낌이 없다 싶으면 초고역대를 증폭해본다. 6kHz이상을 올려보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데, 여기 음역대는 청각에 손상을 주기 쉬우므로 조심한다.

소리에 깊이가 없고 안정감이 없다 싶으면 저음을 올려야 한다. 초저역대를 너무 크게 하면 스피커가 찢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므로 조심한다. 60Hz~200Hz를 조절해보자.

그 밖에 각 주파수대별 특성은 여기를 참고한다.

http://egloos.zum.com/proto/v/4675155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평소에 주파수 밸런스가 잘 잡힌 음악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맨날 저음이 쿵쾅거리는 음악이나 듣다가 어떻게 교회 주파수 밸런스를 잡는단 말인가. 보통 주파수 밸런스가 좋다는 것을 플랫하다, 라고 표현한다. 음악감상용 스피커는 대체로 밸런스가 무너져 있다. 이런 것 말고 모니터용 헤드폰, 이어폰, 스피커 따위로 음악을 자주 들어봐서 플랫한 소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소리에는 회절 현상이 있다. 뭔고 하니 스피커 소리가 싫다고 우산으로 막아도, 건물에 숨어도 옆으로 다 들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절되는 소리일수록 고음이 깎여나가고 저음만 들린다. 물체를 관통해서 들리는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이 특성을 활용해서 팬이 심하게 된 소리일 수록, 즉 좌우로 크게 꺾인 소리일 수록 고음을 좀 깎아주면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극적 효과를 주려면 오히려 좌우로 벌어지는 소리일수록 고음을 높여준다. 드럼의 심벌 소리, 혹은 좌우로 크게 벌어진 기타 소리가 주로 이런 역할을 한다.

저주파수는 멀리까지 전달되는 반면에 고주파는 전달 거리가 짧다. 그래서 멀리서 듣는 소리는 저주파이다. 때문에 가까이 나와야 되는 소리에는 하이에 힘을 주고 멀리 퍼져야 되는 백보컬 등 악기에는 하이를 깎아준다.

여기까지는 전체 음악에 대한 주파수 얘기였고, 이제부터 악기 별로 주파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악기별로 주파수를 조절하면 음색이 달라지는데, 이 음색을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장르이고, 그에 못지 않게 또 중요한 것은 악기 간 밸런스이다. 피아노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교회 찬양 밴드가 테크노 뮤직을 한다?? 그렇다면 피아노 소리는 저음이 절제된 명쾌한 소리여야 할 것이다. 만약 피아노밖에 없다, 그렇다면 모든 음역대를 충분히 감싸주어야 하는데, 특히 베이스 역할도 겸해야 하므로 저음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인 락 음악이라면 저음을 낮추고 (낮은 노트를 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퀼라이저 조절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중고역대를 높여서 타악기로서의 리듬감이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주 일반적인 얘기고 CCM음악은 약간 다르다. 보통 피아노에게는 날뛰는 호날두마냥 프리롤을 준다, 그냥 모든 주파수 영역에서 활약하도록 아무 것도 안 건드리는 것이다.  피아노가 아무래도 팔방미인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 하다보니 그냥 '일반' 상태로 두는 듯.

그리고 베이스 기타, 베이스 주자들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저음에 무진장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특히 교회에서는 중역대나 고역대를 확 깎아내려서 이게 음악인지 그냥 붕붕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만들고는 한다. 감히 말하건데 제대로 된 연주자는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자기 연주가 잘 들리려면 모든 음역대가 골고루 잘 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연주 실력을 감추려는 자들이 보통 중고역대를 깎아버린다. 다소 거슬리게 느낄 수도 있는 베이스의 중음과 고음을 아름다운 하모니로 바꾸는 것이 실력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경우 중고음이 강조되는 것이 당연하다. 멍멍하게 들리지 않도록, 그러나 밸런스가 잡히도록 저음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악기가 엄청 많아서 기타가 별로 필요없을 정도라면 저음을 확 없애버려도 된다. 만약 어쿠스틱 기타가 시끄럽게 들린다면 중음을 확 깎아서 V자로 만들면 된다. 교회에서는 어느 정도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듯.

보컬의 경우는 무엇보다 밸런스가 중요한데.. 우선 마이크는 10~15cm 간격을 두는 것이 정석.. 이었다. 지금은 그냥 입에 가까이 대라고 한다. 하울링을 줄이려면 마이크를 음원과 최대한 가까이 놓고 게인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단일지향성 마이크(대부분)는 거리가 가까울 수록 저음이 부스팅 되기 때문에 저음을 깎아줘야 한다. 리드 보컬의 경우에는 우선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 중요하므로 중음을 강조해주고 백보컬(코러스)은 반대로 중고음을 깎아준다. 시원스럽고 풍부한 음향을 원할 때 고음을 올려주면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마이크는 죄다 고음을 올려놓고 시작하더라. 뭐 취향이다. 내 취향으로는 백보컬로 갈 수록 중음을 깎아 v자로 만들고, 메인 보컬은 중음역대를 올려준다. 특히 1kHz대를 깎는 것이 존재감을 없애고 소리를 뭉개는데 좋다. 실제로 음악 장르마다 시대마다 백보컬의 음역대는 천차만별이다.

일렉기타는 사실 엔지니어보다 연주자가 잘 맞추는게 우선 중요한데.. 베이스와 드럼의 밸런스가 좋다면 일렉기타는 중고역대를 강조하는 것이 정석이다. 특히 일렉기타는 저음, 중저음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왠만하면, 특별한 연주자의 고집이 없다면 500Hz 이하는 확 깎아주는 게 좋다. 디스토션 이펙터가 들어간 기타의 경우 저음은 상상 외로 크기 때문에 베이스 다 잡아먹는다. 이 경우 연주자 입장에서도 자기가 연주한 음이 베이스영역에 들어가므로 음을 마음대로 잡을 수 없고 베이스에 충실해야 하는 제약이 생긴다. 반대로 저음역대를 다 깎아버리면 그냥 마음 편하게 연주해도 거슬리는 일이 없다.



드럼 튜닝


드럼 튜닝은 엔지니어 입장에서 정말 정말 중요하다. 드럼이란 너무 중요해서 전체 음악의 분위기, 장르 자체를 바꾸는 힘이 있다. 

드럼 튜닝은 워낙 자기 개성이 강해서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정튜닝이란 게 있다. 먼저 탑 바텀 피를 적당히 결합하고 쉘을 두드려본다. 쉘을 두드렸을 때 나는 음정을 찾아야 한다. 음이 하나는 아니고 여러 음이 섞여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는 대표되는 음 하나를 어떻게든 집어야 한다. 그리고 바텀피를 그 음정에 맞춘다. 상피는 그 음정보다 단3도 낮춘다. 그러니까 쉘의음이 도라면 상피는 그보다 낮은 도-시-라... 라음이 된다. 이렇게 맞추면 드럼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소리를 최대한으로 뽑아낼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남궁연씨가 만든 동영상이 큰 도움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sLp7TQqK4k
https://www.youtube.com/watch?v=8Vgr_BmtbKs
https://www.youtube.com/watch?v=UGY7TqU39z0
https://www.youtube.com/watch?v=Eu6BFLdCzvQ
https://www.youtube.com/watch?v=pDx2OkvJYVQ
https://www.youtube.com/watch?v=g5GwcBwpEsk
https://www.youtube.com/watch?v=pm6QeEVMN5A
https://www.youtube.com/watch?v=FJDu1iG2L78
https://www.youtube.com/watch?v=46Rk9mJdY64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대로 튜닝하면 소리가 날아다닌다. CCM은 기본적으로 락 기반이기 때문에 조금 더 로우튜닝을 할 필요가 있다. 바텀은 그대로 두고 탑을 원하는 만큼 내려서 깊은 저음을 만드는 것이 보통 지금의 CCM에 어울릴 것이다.

스네어는 워낙 자기 개성이 강해서 한 번에 정리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바텀의 텐션을 거의 한계치까지 올린 상태에서 탑을 조정하는 편이다.



노이즈에 대해서


전류가 통하는 전선에 자석을 갖다 대면 전류가 살짝 변형되는데, 이것이 소리로 잡힌다. 일상생활이나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 특히 프로젝터나 조명에서 나오는 노이즈가 마이크선을 타고 앰프에 잡혀서 잡음이 된다.

이 잡음은 사실 매우 작은데, 큰 신호에 미세한 노이즈는 별 영향을 못 준다. 그러나 미세한 소리에 미세한 영향을 주면 이것이 나중에 믹서와 앰프로 증폭되어 큰 영향이 된다. 스피커선에는 매우 큰 전류가 흐른다. 여기에 약간의 노이즈를 추가해봐야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마이크선에는 매우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이것을 앰프로 증폭하게 되는데, 여기에 노이즈가 침입하면 문제가 크다. 그래서 스피커선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는 반면에 마이크선은 복잡하게 생겼고 가격도 비싸다.

이 복잡하게 생긴 선은 쉴드 처리가 되어 있는데, Balanced와 Unbalanced 두 가지 타입이 있다. 보통 기타에 꽂는 55mm잭이나 폰잭은 unbalanced이고, 둥글게 생긴 마이크 캐논잭은 Balanced이다. Unbalanced는 그냥 아무 노이즈에 대한 대비가 없는 선이고, Balanced는 노이즈를 대비하여 뭔가 처리가 된 선이다. 뭔 처리가 되어 있느냐?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신호가 있다고 가정하자.

[3 -3 3 -3]

여기에 다음과 같은 노이즈가 낀다

[1 1 -1 -1]

노이즈가 더해져서 결과는 다음과 같다.

[3 -2 2 -4]

이 신호를 그대로 쓰면 이건 Unbalanced 이다.


여기서 잠깐, 숫자 나왔다고 건너뛰지 말자! 단순한 덧셈 문제란 말야. 첫번째 꺼랑 노이즈 신호랑 더하면 마지막 신호가 된다.


Balanced는 신호를 두 개로 나누어서 보낸다.

[3 -3 3 -3]
[-3 3 -3 3]

두 번째 신호는 양수와 음수를 바꾼 것인데 요걸 유식한 말로 위상을 바꾸어 보낸다고 한다.
나중에 최종 신호는 위상을 되돌린 뒤 합친다.

[3 -3 3 -3] - [-3 3 -3 3] => [6 -6 6 -6] 소리가 좀 커졌지만 어쨌든 똑같다.

이 때, 정상 신호와 위상이 바뀐 신호 모두에 동일한 노이즈 [1 1 -1 -1]이 가해지면

[4 -2 2 -4]
[-2 4 -4 2]

이렇게 되는데 최종적으로 위상을 돌려서 합치면 [6 -6 6 -6] 이 되어 노이즈의 영향이 없다.

원래 신호를 a, 바뀐 신호를 -a라고 하고, 노이즈를 b라고 하면
a 와 -a를 보냈는데 노이즈가 껴서
받는 측에서는 (a + b)와 (-a + b) 를 받게 되고,
마지막에 합칠 때는 (a + b) - (-a + b) 로 되어 b가 없어진다.

하여튼 그렇다!

그래서 믹서가 무대 뒤에 있을 때, 무대 앞 마이크로부터 무대 뒤에 있는 믹서까지 길게 선을 연결할 때, 멀리까지 입력신호를 보내면서 노이즈가 걱정될 때는 무조건 balanced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unbalanced를 balanced로 바꿔주는 기계를 다이렉트 박스라고 한다.

우리가 쓰는 220볼트 교류 전류는 보통 60Hz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는 소리가 있으며 교류 전류의 소리가 스피커로 들릴 수 있다. 조명이나 기타 전자 기계를 음향기기와 같은 콘센트에 꽂아두는 경우에도 노이즈가 들어온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우우우웅~ 소리가 들린다면 깨끗한 전원이 공급되는지, 혹은 언밸런스 선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마치면서...


그냥 아는 바를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적어보았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시간 나는 대로 업데이트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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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인도자를 위한 조언

회중찬양 리더를 10년 이상 하면서 노하우가 생긴 게 많다. 처음에는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그냥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실수 투성이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겪지 않도록 내가 깨달은 바를 글로 써 본다. 나름대로 10년 노하우의 정수를 담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고 엉켜 있는데 그냥 되는대로 일단 적어본다.

참고로 지금 글을 쓰는 본인은 현재 교회를 안 다니고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보기에 거슬리는 내용은 없다고 자부한다. 교회도 안 다니면서 왜 이런 글을 쓰는가? 모르겠다,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서.



회중이 원하는 찬양을 하라


찬양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찬양을 한다. 문제는 찬양은 누가 하는가? 이다. 내가 아니라 회중이 한다. 찬양 인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회중들이 하고 싶은 찬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양을 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런데 그 찬양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아는가? 찬양인도자인 당신에게만 하나님이 몰래 귀뜸을 해주는가? 그 찬양을 찾는 첫 번째 비결이 바로 회중이 원하는 찬양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찬양 당사자인 회중에게 먼저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개인의 느낌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

찬양 리더가 되면 회중에 엄청난 영감을 불어넣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다. 어디 해외 유튜브나 다른 모임에서 굉장히 좋았던 찬양이 있으면 그걸 우리 교회에서도 하고 싶다. 하지만 찬양 리더의 첫 걸음은 눈높이를 회중에 맞추는 것이다. 진짜 중요하니까 한 번 더 말하겠다. 회중들이 원하는 찬양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찬양 리더의 첫 번째 역할이다. 인도자는 회중을 앞서가기도 하지만 뒤에서 따라가기도 한다. 인도자로서 준비와 계획은 철저히 하되, 항상 회중이 먼저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섬김의 자리에 있다. 교회와 회중을 위해 바짝 엎드릴 준비를 하라.



은혜란 무엇인가?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 받았다는 말을 한다. 어쩌면 모두가 은혜 충만한 예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찬양 인도자로서의 목적이 될 수도 있겠다. 은혜라는 것은 예배를 드릴 때 느끼는 좋은 감정이다. 오늘 예배 잘 드렸다~ 하는 것도 다 내 마음에 흡족하다~ 결국 이런 뜻이다. 예를 들어, 나는 고통스럽고 힘들게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기뻐 받으셨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은혜받았다는 말을 안 쓴다. 자기 감정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은 굉장히 성숙한 신앙생활의 열매 중 하나일 순 있는데, 대부분의 회중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그저 본인 마음에 흡족하게 찬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양 = 내가 좋은 찬양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자.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자연스럽게 우리도 같이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거나,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해 감격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분명 좋은 예배의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도록 바라고, 노력하는 것이 찬양인도자의 사명일 것이다.

우리가 예배 중에 감정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다. 어쩌면 그것을 위해서 예배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것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기도 하는 모순에 있다.

한 가지 본인의 경험으로 확실한 것은, 인도자가 그런 감정/감동에 집착할 수록 주님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주님과 멀어질수록 예배의 감동도 사라진다. 우리는 감정에 메마르고 위로가 필요할 수록 더욱 순결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너무 감정적인 예배를 억지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무난하고 때로는 건조할 수도 있는 평온하고 온화한 예배를 추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든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고민하다보면 신파의 함정에 빠진다.

그리고 나는 은혜받는 확실한 비법을 한 가지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치열하게 싸우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 사람에게 어떤 은혜가 있을까? 은혜는 치열하게 주님을 위해 하루를 살아간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찬양 중간에 드럼이 멈춘다고 은혜가 내리는 게 아니라.

모든 예배에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원한다면 당신의 삶부터 치열하게 바꿔야 한다. 찬양인도자인 당신마저 위로만 바라는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기분만 내려하지 말고, 먼저 헌신할 준비를 하라. 당신이 찬양인도자로서 철저하게 도구로 쓰일 준비를 한다면 그 때는 성령께서 당신부터 채워주실 것이다. 은혜는 음악이나 가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드려진 삶으로부터 온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삶에는 당연히 주님의 위로가 있다. 그런데 위로만 받고 싶고 삶은 안 드리고, 그게 우리의 문제이다. 그럴 때 받을 은혜는 회개밖에 없다.



당신의 기분은 예배와 아무 상관이 없다

찬양인도자의 기분과 상태는 회중의 은혜와 별개의 것이다. 본인이 즐거우면 좋은 예배가 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흥을 돋구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음악적으로 뭘 하려고 하는 행위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

뭔가 흥이 나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오히려 차분해져야 한다. 아무 격정적인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모두가 편안하게 찬양을 할 수 있도록 해보자. 늘 뭐 대단한 은혜가 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번 예배도 감사하는 마음, 평온한 마음으로, 서로 화목하게 잘 드리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음악은 중요하다


한 때는 음악이 오히려 성령님의 진정한 활동을 방해하고 인위적인 우리의 감정을 넣는다면서 극히 제한적인 음악적 요소만 넣으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예를 들어 1000년 전 중세에는 화음을 넣는 것을 불경하다고 여겨서 무조건 단음으로 찬양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음악적 감흥이란게 그렇게 불순한 것인지, 혹은 이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산 속에 있는 기도원에 가면 통성기도할 때, 전쟁이라도 난 것 마냥 북을 쾅쾅쾅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북 소리가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더 흥분이 되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이다. 북 소리에 따라 기도하면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인지 고수의 인도를 받은 것인지 헷갈린다. 내 마음에 드는 이 절실하고 흥분된 감정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물론 근본이야 내 믿음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겠지만 북소리가 없었으면 내 마음이 이렇게 고조될 수 있었는가? 아 저놈의 북소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찬양인도하는 사람들이 각종 음악적 다이내믹한 요소들을 넣어가며 어떻게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발버둥치지 않나. 우리는 그런 노력에 익숙하다.

CCM이 아무리 컨템포러리한 21세기 음악 경향을 모두 담아서 메탈 찬양도 있고 힙합 찬양도 있다. 그러나 트로트 뽕짝으로 된 찬양은 없다. 있다고 해도 그게 회중찬양에 적합할 수는 없다. 반주도 다 틀리는 엉터리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뵙기란 쉽지 않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람의 마음은 음악의 영향 아래 있다. 성령님의 일하심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겠지만,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적절한 상황과 여건을 만드는 것이 예배인도자의 사명이다. 

이제 나의 결론이다.
찬양 인도할 때는 너무 음악 요소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쓰지 말라. 그런 거는 다 티나고 거슬리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 마음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 하라. 안 틀리고 듣기 좋도록, 회중들이 불안해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도록, 곡의 흐름에 맞도록, 은혜로운 찬양을 하라. 너무 격정적으로 하지 말고 부드럽게 하라.

음악적인 노력과 준비는 회중 앞에 나서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예절과 섬김이다. 동네 노래자랑을 나가도 준비와 연습을 한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으로서 아무 준비도 없으면 되겠는가.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음향은 더 중요하다

예배가 뭔가 산만하고 감흥이 없다면 음향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엔지니어만 있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왜 사람들이 대형 집회를 선호하는가? 해답 : 왜 사람들이 집에서 보는 TV에 만족하지 않고 극장에 가는가를 생각해보라.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규모마다 느껴지는 느낌이 다르다. 몇몇이 모여서 오손도손 기타를 치면서도 충분히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큰 규모라도 일렉기타가 유난히 거슬린다던가 마이크의 음질이 좋지 않다던가 하면 예배에 집중하기 힘들다.

규모가 커질 수록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아지는데, 어지간히 큰 규모의 교회에서는 좋은 엔지니어를 두기 마련이므로 걱정이 덜하다. 작은 규모에서는 단촐한 악기 구성이기 때문에 신경쓸 것이 없고 불협화음의 문제가 없다. 문제는 중간 규모이다. 이제 드럼과 베이스를 놓고 뭘 해보려는 찰나, 음향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선은 악기가 추가되었다는 감격과 기쁨에 충만할 때, 그런데 연주자는 초보라서 정신없이 박자 맞추기도 버거워할 때, 그 때 너무 기분에만 취하지 말고 음향이 어떤지 냉정하게 살펴보자.

초보 연주자는 기본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기본만 가지고는 정말 어색한 음악이 된다. 음악적 요소만 놓고 본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오르지 않으면 아예 청중석에 앉아 있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음악보다 화합이 중요하고 대중들이 초보의 연주를 감싸줄 수 있는 아량이 있으면 같이 하는 것도 고려해본다. 연주자가 너무 의욕이 넘치면 찬양 인도자로서 뭐라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찬양 인도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도 단원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다. 연주자가 너무 자기 흥에 취해 밸런스를 깨고 있다면 진지하게 대화를 해 봐야 한다. 하나됨을 위해 연주자가 좀 부족하더라도 감싸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됨을 위해 연주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음향 밸런스가 완벽하게 갖춰지면 인도자는 별로 할 것이 없다.아무 것도 안 해도 듣기 좋고 따라부르기 좋은 찬양이 된다. 본인이 쓴 글을 참고해도 좋다.




새 찬양은 별로 필요 없다


사실은 아주 필요 없다. 이미 수많은 곡이 다 나와 있고, 충분하다. 찬송가만 해도 500곡이 넘는데, 다 부르려면 세월이다. 새 찬양은 회중이 원할 때만 하는 게 좋다. 새 찬양을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그런 소리가 들리면 당장 그만두라.

새 찬양은 딱 듣자마자 듣기 좋고 따라 부르고 싶고 그래야 한다. 그것도 찬양인도자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그래야 한다. 본인은 듣자 마자 좋았겠지만, 다른 사람도 그런지 고민해보자. 새찬양은 억지로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새 찬양을 부른다고 은혜가 더 넘치고 그러는 것도 아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다른데 있지, 새 찬양을 못 불러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시 회중이 원하는 새찬양이 있으면 거기에 따라가는 정도로 충분하다.



노래 부르기  - 꾸안꾸!


일단 찬양 인도자의 노래 실력은 있으면 엄청 좋다. 그 어떤 화려한 편곡과 악기보다 인도자의 진실된 목소리가 회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찬양 부르는 목소리가 좋으면 청중은 훨씬 쉽게 찬양에 집중하고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없어도 괜찮다. 노래 실력이 형편 없으면 작게 부르거나 안 부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되는게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 한다. 부르는 것보다 안 부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음 가사만 멘트해서 정확히 인도만 하고 찬양은 하지 마라. 나머지 찬양은 회중이나 코러스에 맡기자. 코러스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해야 되면 규모가 작을 테니 이때는 마이크를 멀찍이 떼고 작게 부른다. 가끔 마이크 없이 기타 하나만 달랑 메고 10명 이상을 인도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내 노래소리는 어차피 하나도 안 들린다. 그래도 아무 상관 없이 은혜롭기만 하다.

찬양 인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노래 실력이란? 우선 음정 박자는 정확히 맞춰야 된다. 솔직히 박자를 틀리는 정도면 찬양 인도의 은사는 없는 거 아니냐... 는게 객관적인 생각일 것이지만 하나님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음정 박자는 틀려도 그래도 노래는 잘 한다!"  ?? 그게 노래 잘 하는 거 맞냐? 맞다 쳐도 혼자서 부를 때 감정이나 표현을 잘 한다는 수준일 것이다. 회중 찬양은 다 같이 부르는 찬양이기 때문에 무조건 박자와 음정이 통일되어야 한다.

특히 찬송가의 경우, 악보대로 안 부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악보를 볼 줄 아는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음정 박자를 맞추는 이유는 다같이 통일하여 거부감없이 부르기 위함일 뿐, 어떤 음악적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노랑'으로 부르는 데 '파랑' 이 맞다고 우길 필요가 없다. 악보대로 불러야 성령이 임재하시고 틀리게 부른다고 하나님한테 혼나는 거 아니다.

음정 박자를 맞추고 나면 다음은 성량이다. 여기서 성량이란 진짜 목소리의 크기나 호흡보다는 큰 소리라고 느껴지는 음질의 해비한 무게감을 말한다. 특히 저음에서의 성량이 중요하다. 고음의 후렴부는 굳이 찬양인도자가 안 불러도 회중의 목소리로 충분하다. 그러나 저음의 도입부에 인도자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도자 중에는 이상하게 고음병에 걸려서 찬양이 저음이면 은혜가 안 되고 고음이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저음 부는 키를 높이거나 화음을 넣어서 일부러 높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거는 매우 나쁜 습관이다. 이 습관의 첫째 원인은 저음을 잘 못 부르는 자기 목소리다. 헤비한 음색을 굳이 트레이닝하려면 목이 쉴 정도로 노래를 부르고 쉬고를 반복하면 되는데 한 번 변한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으니 신중해야 한다. 두 번째 원인은 찬양인도자인 내가 고조되고 내가 신나게 불러야 회중들도 신날 것이란 착각이다. 내 기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심심한 저음이 이어지더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부르면 된다.

화음 넣는 버릇은 진짜 안 좋다. 인도자는 화음 넣는 위치가 절대로 아니다. 우선 이런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 따위는 내려놓고(!) 자신의 기분으로 찬양하려는 버릇이 있는 거 아닌지 돌이켜보자. 화음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음악적인 감흥에만 너무 집중한 것은 아닌지, 과연 우리의 은혜와 성령의 임재하심이란 어떻게 오는 것인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굳이 화음이 들어가야 된다면 코러스에게 맡기자. 코러스가 잘 못한다 하면 그냥 넘어가자.

작곡가가 멜로디를 만들 때는 여러 가능성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음을 고른 것이 현재의 결과다. 작곡가가 하필 미를 멜로디로 선택한 것은, 도나 솔이 아닌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게 본 멜로디가 아니면 음악적으로 멜로디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본 멜로디가 주는 안정감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자. 모든 찬양 멜로디는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하여 더 추가할 것이 별로 없다. 다 떠나서라도 인도자가 화음을 넣으면 듣는 사람은 헷갈린다. 은혜로운 찬양의 첫 번째는 안정감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이런 저런 신경쓸 일이 많으면 예배에 집중이 안 된다. 인도자가 화음을 넣는 순간, 그 소리가 청중에게 들리면서 신경쓸 일이 늘어나는 것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부르는 사람이 좀 허전하더래도 좀 좀 참자.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살짝 넣으면 좋을 거라고? 그럴 수도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글쓴이의 취향이라고 해두자. 본인 생각에는 아예 안 넣는게 상책이다. 찬양인도자는 항상 회중을 따라가는게 좋다.

인도자로서, 싱어로서 테크닉은 무조건 도움이 된다. 다만 예배인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적절하고 절제된, 세련된 테크닉이 필요할 것이다. 몇 가지 적자면, 우선 과한 감정이입은 피한다. 도입부를 너무 잔잔하고 멋있게 처리하거나 후렴이라고 해서 강력한 애드리브를 넣거나 하지 말고 원래 멜로디를 정직하게 안 틀리고 한결같이 잘 부르는게 중요하다. 이게 순전히 글쓴이의 취향인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케바케의 문제가 아니라 정답이 있는 문제이다. 특송이라면 성악톤으로 불러도 되고 마음껏 감정이입을 해도 된다. 그러나 예배 인도를 성악의 창법으로 부른다면 단언컨데 그것은 틀렸다. 자연스럽고 튀지 않는 그러나 아름다운 발성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

미성도 연습해본다. 미성이 뭐냐고? 10m 거리에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 안 들리게끔 조용히 찬양을 해 보면 그 톤이 미성인데 톤은 유지한 채 볼륨만 키워보자. 항상 배에 힘을 주어 부르는 건 동요 부를 때나 하는 것이고, 인도자는 미성도 잘 쓰면 좋다.

그리고 바이브레이션. 대부분의 찬양하는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테크닉인 것 같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감정 표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없으면 연습해서라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미 있는 사람은 과하게 쓰지 않도록 하고 바이브레이션 없이 노래부르는 연습도 따로 해둬야 한다. 무조건 습관적으로 넣는 것이 아니라 우선 바이브레이션 없이 노래를 불러본 뒤, 허전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 언제인지 고민해야 한다.

쉰 목소리가 나는 탁성은 적절히 쓸 수만 있으면 매우 효과적.. 이긴 한데, 이런 건 너무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 밖에 너무 비음을 섞는다거나 특정 음악적 장르의 느낌이 너무 묻어난다거나 하는 나쁜 습관이 있으면 고치는 게 좋겠다. 하여튼 듣기 부담스럽지 않게 부르는 게 최고 덕목이다.

꾸안꾸! 꾸민 듯 안 꾸민 듯 열심히 노력하되 꾸민 느낌은 안 나도록, 정교하게 부르되 너무 테크니컬하지 않도록 한다. 진심이 느껴지도록, 그러나 틀리지는 않도록.



자신감있게 하라


회중들의 무표정에 기가 눌려 있으면 안 된다. 자신감 있게 그저 하고자 했던 것을 하라. 반성은 다 끝나고 내려와서 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리더가 당황하면 회중은 더 혼란스럽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준비가 되면 자신감이 있다. 학교 교실에서 준비가 안 된 선생님을 학생들이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것처럼 준비가 안 된 리더는 바로 눈에 보인다. 자신감을 가지고 리드하면 그 자신감을 회중이 다 본다. 그러면 믿고 따라갈 수 있다.

가장 좋은 준비는 여러 번 불러보는 것이다. 혼자도 여러 번 해보고 다같이서도 여러 번, 혹은 반주자 한 명만 끼고서라도 여러 번 불러본다. 어떤 부분이 은혜가 되는지 먼저 느껴본다. 멘트도 미리 다 적어본다. 준비된 리더가 되자.



콘티 


찬양인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콘티를 짜는 것이다. 다른 건 누가 참견하고 도와주더라도 콘티는 혼자 짠다. 그만큼 인도자의 영감과 역량이 중요한 부분이다.


콘티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메시지, 그리고 음악적 분위기.

우선 메시지. 가사는 신경도 안 쓰고 코드만 연결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내용이 중요한데, 주의할 점이 있다. 너무 청중에게 뭘 주입시키려고 하지 마라. 하고 싶은 말, 이런식으로 은혜받았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생각, 그걸 너무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복은 적당히, 청중이 원할 때만 하고 피곤하게 하지는 말자.

때로는 신나는 곡들 몇 개를 가사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그냥 묶어서 부를 때도 있는데, 뭐 어떠랴 신나고 좋기만 하다. 일단 신나고 좋다면 그것도 은혜다.

보통 3-4곡을 부를 때, 한 가지 주제에 너무 노골적으로 집착하면 청중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은근히 연결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다음 음악. 콘티 짜면서 음악적으로 신경쓰는 부분은 빠르기, 그리고 코드 연결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인도자들은 코드 연결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냥 살짝 끊고 가도 괜찮다~


보통 20분 정도 찬양을 한다고 하면 4-5곡 정도 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4곡 정도를 좋아한다. 여기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정석적인 예배 감정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

주님의 임재 혹은 우리가 예배로 나아감 혹은 교제와 축복,
감사와 찬양을 드림,
회개와 은혜,
결단과 헌신,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 

이것은 일반적인 기도문의 절차와도 비슷하다. 이 모든 것을 담아도 충분한 찬양 콘티가 된다. 특별한 영감이 없으면 그냥 이 대로 해도 좋은데, 하나님을 영접하는 처음 구절의 의미는 강조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이후 예배 순서로 미루고, 찬양 인도에서는 보통 주님의 은혜를 구하거나 다짐의 고백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예를 들어보겠다.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예수가 좋다오(많은 사람들)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 오늘 이 하루도(내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합니다)

첫 곡은 교제도 되고 찬양도 되고, 이런 곡이 첫 곡으로 매우 적절하다.
마지막 곡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은 사실 문맥상 뜬금없긴 하다. 그냥 다들 좋아하는 찬양 이라서 그냥 넣었는데 뭐 어떠랴. 다들 그 곡을 부르고 싶어하는 것을. 꼭 하나의 주제로 안 이어저도 괜찮다. 만약 주제를 이어가려면 세번째 곡의 후렴이 헌신과 관련된 것을 포인트로 잡아서 '오늘 이 하루도'와 같은 곡을 넣으면 좋겠다. 하여튼 빠르게 시작해서 느리게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목마른 사슴(D코드)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오직 믿음으로(세상 흔들리고)

역시나 중장년층 콘티. 전체 곡이 하나님의 능력과 나를 보호하심으로 주제가 통일되어 있다. 전부다 똑같은 내용 같지만 그래도 순서가 있다. 첫 곡은 하나님을 찾는다, 마지막은 내가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구조가 잡혀있다. 모두 느린 곡이고 가사가 좋아서 엉덩이를 흔들며 찬양에 푹 빠지기 좋은 형태.



빛으로 부르신(주님이 우리를) / 두 손들고 찬양합니다.
경배하리 내 온 맘 다해
하늘위에 주님밖에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 온전케 되리
 + 온 맘 다해(주님과 함께 하는)

이것은 약간 젊은 장년, 늙은 청년을 위한 콘티. 전체 곡이 '오직 주님'이라는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 곡을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로 하면 너무 노골적으로 헌신을 강조한다. 인위적인 느낌은 은혜에 좋지 않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약간 다른 느낌으로 '빛으로 부르신'이 신나고 더 좋은 것 같다. 마지막 '온 맘 다해' 역시 좋은 곡이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싶다. 기도 한 번 하고 후렴만 부르거나 하는 식으로 더하면 좋을 듯.
조금 더 변화를 주고 싶다면 네 번째 곡에 '온전케 되리'와 같이 살짝 주제를 전환하는 것도 좋다.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렇게 되지 못하는 회개, 혹은 그렇지 못함에도 감싸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연관된다.

요즘은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수 십자가의 흘린 피로서, 와 같은 직접적으로 회개를 간구하는 찬양은 잘 안 하는 추세인데, 할 수 있으면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고, 이런 찬양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나는 너무 고지식한 사람인지.

그리고 새로운 찬양을 원한다면 요즘 찬양도 좋지만 옛날 고형원, 혹은 더 내려가서 최용덕, 김석균과 같은 사람들의 곡을 찾는 것도 좋다, 찬송가를 재해석하는게 유행이었듯이, 이들 곡들도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여튼 찬양 콘티를 짤 때는 전체가 하나의 기도로 묶여지는가 이런 점을 생각하면 좋다. 멘트를 넣을 부분이 어디인지, 가사의 어떤 구절을 강조할 것인지 생각해두어야 한다. 특정한 주제를 넣어도 좋은데, 너무 대놓고 주제를 부각하면 부자연스럽다. 마치 다른 내용인 것 같은 찬양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게 가장 좋은 베스트.



멘트는 간결하게


멘트라는 것은 찬양 콘티만으로 주제를 부각시키기 어려울 때, 또는 흐름을 유도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가장 좋은 것은 아무 멘트도 하지 않는 것이다. 멘트 없이도 그냥 가사로 은혜가 되고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는게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데 찬양만으로는 메시지가 부족할 때 인도자가 개입하여 이런 식으로 은혜받으십시오~ 하고 알려주는 게 멘트다.

그런데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자체가 찬양 인도로서 그렇게 좋은 행위가 아니다. 시켜서 억지로 받는 은혜에는 거부감을 느끼기 떄문이다. 특히 특정 구절을 억지로 반복하는 습관은 매우 안 좋다. 맨 처음 말했던 것을 다시 상기해보자, 찬양 인도자란 회중이 원하는 찬양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원하는 찬양을 부르게 하면 되는 것일 뿐, 찬양인도자는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인도자는 콘티를 고르고, 나머지는 회중에게, 하나님에게 맡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이런 생각이 간절히 든다면.. 뭐 어쩌겠나,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할 수는 없으니, 순종하는 마음으로 멘트를 할 수 밖에. 이런 경우는 설교와 찬양이 섞이는 형태로 봐야 한다. 설교는 머리에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게 아니다. 기도와 간절함으로 준비하는 것이며, 내 불순한 생각이 섞이지 않도록 민감해져야 한다. 멘트를 꼭 해야 할 때는 설교에 준하는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고, 책임감과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




평소 삶이 중요하다


학교다닐 때 좋은 선생님 밑에서는 공부가 잘 되는데 재수없는 선생님이 뭘 가르치면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찬양인도자는 특히 평소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상처주게 되면 그 사람은 당신이 인도하는 모든 예배를 망치게 된다. 반대로 평소 진실되고 겸손하게 행동하면 당신을 통해서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약간 다른 얘기 같지만.. 교회 다니면서 술 먹고 담배 피워도 되나?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당신에게 술 마시고 담배피는 목사님도 괜찮은지 생각하면 된다. 목사님에게 기대하는 삶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찬양인도자인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보자.

찬양밴드란 것은 음악적으로 잘난 사람들이 무대에 나와서 잘난척을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찬양인도자는 가장 잘난 사람이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보여서는 안 된다. 뽐내는 것은 자제하고 열심히 섬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요나처럼, 세례요한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회개할 것을 외쳐야 한다.

온유하고 겸손하라. 찬양인도할 때만 성도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24시간 섬겨야 한다.



그냥 다 안 중요할 수도..?


같은 콘티로 하는데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다른 분이 짰던 콘티를 급하게 받아서 그냥 한 적도 있는데 그저 곡에서 와닿는 부분만 연결해도 충분히 좋은 예배가 됐다. 그 자리에 모인 성도님과 찬양단의 마음가짐과 진정성만 있다면 하나님은 뭘 어떻게 해도 응답하신다. 때로는 사람의 계획과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루 종일 짜증과 불순한 마음들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찬양 인도를 하려고 자리에 섰다면? 그날 예배는 나 때문에 망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사용하시는걸까. 찬양인도자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감격을 경험하게 된다. 당신이 아무리 망나니라도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 한, 당신은 반드시 쓰임받게 된다. 스스로의 부족함과 좌절을 느끼는 최후의 최후라도 당신을 사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회중 탓을 하지 마라


회중에 대해 얘기할 때, 은혜 받을 생각이 없다는 둥, 맨날 찬송가만 부른다는 둥, 믿음이 없다는 둥, 회중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이것은 사실 모든 사역자가 겪는 일인데, 모세도 그랬다. 40년의 광야 생활이 끝날 무렵, 어느날 백성들이 물이 없는 곳으로 왔다고 불평을 했다. 우리를 죽일 셈이냐 하고 모세에게 따졌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를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 40년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수도 없는 기적을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놈의 백성들은 아직도 불평하는가, 모세는 짜증이 났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물을 내랴 하면서 바위에 명령하는 대신 지팡이로 쳤더니 그래도 물이 나왔다. 이 불순종으로 그는 끝내 가나안 땅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40년동안 변함이 없는 건 백성 뿐 아니라 모세도 똑같다. 그 역시 그 놈의 성질머리를 못 고쳤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부족한 모세를 통해서도 바위에서 물을 내는 일을 행하신다.

회중이 지각을 해서 찬양시간에 자리가 텅텅 비든지, 혹은 딴짓을 하든 그런 것은 일단 당신이 신경쓸 일이 아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에 신경쓰지 말고, 찬양 리더는 사역자로서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잘 하면 된다.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당신은 그저 물을 줄 뿐이다. 딴짓 하는 사람도 있지만 찬양에 푹 빠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를 섬겨라. 혹은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해도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어찌 교만한 마음으로 누구를 탓하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자의 마음을 잃지 말자. 책임감있게 사역을 완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사단은 자꾸 과거와 현재를 당신 눈 앞에 들이민다. 당장 교회에 모인 사람들과 현실을 보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말씀하시고 꿈을 보여주신다. 항상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전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 혹은 개척교회에서 힘들게 사역해 본 경험이 있는가? 뭘 해도 좋으니까 제발 아무나 앉아만 있어달라고, 어쩔 때는 지나가는 멍멍이라도 그냥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성도 한 분 한 분의 존재가 간절할 때도 있다. 찬양의 은혜고 뭐고 간에 그냥 교회에 사람들 출석만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보았는가? 한 명씩 성도가 빠져나가고 서로 믿음을 잃어갈 때 외로움을 느껴보았는가? 

우리가 교회에서 사람을 만나고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삯꾼은 늑대가 오면 도망치지만 목자는 목숨을 걸고 지킨다. 찬양인도자인 당신도 삯꾼의 마음이 아니라 목자의 마음을 가진다면, 앉아있는 성도 하나 하나가 그렇게 이뻐보이고 귀할 수 없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고, 앞에 서 있는 단원들과 예배드리는 교인과 그 모두를 사랑하기 바란다. 그것이 어쩌면 찬양인도자의 유일한 덕목일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러한 삶을 사는 것,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예배자로 온전히 선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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