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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즈온 머신러닝 2판 - 풀스택 인공지능 개발자를 위하여



오렐리앙 제롱 지음

박해선 옮김

rickiepark/handson-ml2: 핸즈온 머신러닝 2/E의 주피터 노트북 (github.com)


내가 강의할 때 쓰는 책이다. 먼저 강의 용도로 말하자면 120시간 강의를 해도 다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시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책에 있는 내용 전부 다 코랩에서 실행 가능하고, 소스 코드를 전부 깃허브로 오픈했기 때문에 수강생들이 공부하기도 편하다.

딥러닝에 대한 학문 체계를 살펴보면 인공지능 > 패턴인식 > 머신러닝 > 신경망 > 딥러닝 순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골치아픈 통계와 확률을 다루는 패턴인식은 건너뛰고 현실적으로 딥러닝에 쓰일만한 요소들만 모아서 머신러닝을 설명한다. 그리고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SVM, 앙상블, 클러스터링, PCA 를 소개하고 딥러닝으로 넘어간다. 딥러닝 파트에서는 텐서플로우-케라스를 기반으로 하여 영상처리, 시계열처리, 인코더-GAN, 강화학습 까지 충분한 범위의 주제들을 고루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풀스택 개발자에게 좋다. 여기서 풀스택이란 연구에서부터 응용개발까지 아우른다는 뜻이다. 단순 사용자가 아닌 연구자를 위해 머신러닝의 기본 개념에서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책이며 나름 골치아픈 수식과 그림이 등장한다. 소스코드도 단순 사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API 사용법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연구 방향대로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도록 상당한 수준의 로우 레벨까지 커버한다.

저자는 어떻게든 방대한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세계를 한 권의 책, 900여 페이지에 담아보려 했다.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보니 개별 항목에서는 다소 불친절한 부부이 있다. 기본적인 수학적 사고와 바탕은 갖추어야 혼자서 공부가 수월할 것이다. 기초적인 선형대는 할 줄 알아야 하고, 넘파이는 좀 해야 한다. 판다스는 몰라도 큰 지장이 없다.  이런 류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 그러나 소스를 실행해보면서 천천히 발을 담궈보기에는 매우 좋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내용은 없다, 어려운 설명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부족함을 가지고 저자에게 화풀이하지 말라'.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나머지는 내버려둔다 해도 책은 책으로서의 가치를 다 한 것이다.

기초가 부족한 사람들은 깃허브에 올려진 추가 내용을 보면 좋다. 넘파이와 판다스를 집중 공부할 수 있는 예제가 실려있다. 심지어는 자동미분에 대한 내용도 보충설명이 되어 있다. 

박해선 선생님이 책을 번역한 것도 모자라서 깃허브 소스코드도 번역해놨다. (2판 추가 부분은 번역이 안 되어 있음) 직접 촬영해주신 강의 동영상도 있다. 공부하기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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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즈온 비지도 학습 - 이것은 책이 아니다

 



비지도학습과 관련해서 좀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검색하다가 그냥 가장 최근에 나온 아무 거나 골라서 보게 된 책?이다.

텐서플로우, 케라스 막 이런 걸 제목에 달고 있지만 저것은 말 그대로 제목 장사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PCA와 군집화를 다루고 있다.

석사 수준의 다양한 방법들을 나열하고 있기는 한데, 제목만 나열하고 설명은 한 페이지 정도인데, 그 설명조차 매우 빈약하다. 처음엔 번역을 못 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다시 보니까 그냥 애초에 내용이 부실하다.

다양한 코드 예제가 있지만 코드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그냥 독학해야 된다.

다양하고 쓸데없는 실험 결과를 나열하고 있는데 전혀 해설이 없다. 자고로 가장 좋은 실험이란 결과를 이미 예측한 상태에서 검증을 해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좋은 실험은 결과는 모르지만 실험으로 밝히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것이다. 최악의 실험은 왜 하는지도 모르고 당연히 결과도 모르는 실험이다. 더 최악은 결과에 대해 아무 해설도 할 수 없는 실험이다. 이 책의 실험은 어디에 해당할까 하니 가장 최악이거나 그 다음 악이거나 그렇다.

특히 내가 아는 내용일수록 설명과 실험과 테스트가 너무 엉터리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고 나니 모르는 내용은 감히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28x28 MNIST 이미지를 플랫한 다음에 앞에서부터 n개를 꺼내서 그 특징으로 군집화를 돌려보는 부분이다. PCA는 10개로 추려도 잘 되는데 그냥 n개 꺼내면 결과가 좋지 않으니 PCA가 얼마나 우수한가! 이러고 앉았다.


야.. 진짜 사기당했다 이거는 ㅋㅋㅋㅋ 이것은 책이 아니다. 진짜 책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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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 성의없고 뒤떨어진 최신 패션

 



  어느 날 갑자기 패션에 좀 신경써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에스콰이어 1년 정기구독을 충동구매했다. 하지만 첫 배송을 받자 마자 세상에 이런 잡지가 있나 하는 분노가 치밀어 편집장에게 장문의 항의 메일을 보냈다. 내용인 즉,

1. 인터뷰에 주제가 없다.
2. 겉멋이 들어간 필체와 신변잡기가 거슬린다.
3. 패션이 멋이 없다.


우선 패션이 멋이 없어보이는 거야 내 눈이 문제일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패션 잡지가 무슨 쇼핑몰도 아니고 난방에 가디건만 입고 나올 수는 없으니깐.

하지만 내용이 허술한 것은 정말 문제다. 모든 글은 시작부터 끝까지 별 다른 내용이 없다. 온갖 신변잡기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무의미한,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글자수 채우기일 뿐이다. 쓸 말이 없는데 뭐라도 써야 하는 초등학교 일기장의 느낌이랄까.

특히나 불편한 것은 인터뷰다. 왜 그 사람을 인터뷰하는지, 무슨 말이 듣고 싶은지 전혀 방향이 없다. 아무 방향도 없이 요즘 머하세요, 머하고 지냈나용 하하하 끝. 이게 뭐야. ㅜㅜ


편지를 보냈건만 답장도 없고 몇 달 치 모아봐도 별로 달라진 것도 없어서 나중에는 그냥 넘기지도 않고 쌓아두다가 당근마켓에 과월호 공짜로 나눠준다고 올린답시고 찍은 것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요즘 누가 잡지책을 사다 보는가. 나름 레트로 감성으로 구독을 끊었건만. 안 팔린다고 플랫폼 탓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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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글쓰기 - 사내정치로 이루는 유토피아



강원국이란 사람이 지었다. 대우에서 꽤 오랜 시간 일했었고, 무엇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대통령의 글쓰기란 책이 너무나 유명하고 잘 팔렸다. 잘 팔리는 김에 속편을 낸 것이다.

  강원국 스스로 말했다, 대통령의 글쓰기가 잘 팔리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대통령을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원래는 책을 사볼 생각이었는데, 이 말을 듣자 왠지 책을 다 읽은 기분이 들었다. 노무현에 대해서야 뭐 워낙 잘 알기 때문이고, 또한 질리도록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을 골랐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인 줄 알고. 이 책에 대한 지은이의 서평도 약간 들어봤으면 좋을 뻔했다. 아니, 겉표지만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이런 실수는 안 할 뻔했다. 써 있잖아,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90가지 계책'. 글쓰기 책이 아니다.

  책속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단어, 그러나 이 책의 핵심 주제, 그것은 바로 '사내 정치'이다. 정치란 아랫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벌이는 행위기도 하지만, 윗사람이 잘 다스리기 위해 벌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저런 입장에서 회장부터 말단까지 회사의 각 사람들이 해야 할 올바른 정치의 길을 제시했다. 여기서 올바름의 기준은, '유토피아'다, 즉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얼마나 부합하는가. 이 '유토피아'란 단어는 대단히 오글거리니까, 좀 다른 말로 대체하자면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 정도 되겠다. 회장님에게 잘 보이는 방법과 같은 처세술이 어떻게 내 정신 건강을 이롭게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사내 정치'. 이 단어가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그 느낌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분이다. 정말 어땠냐고? 그냥 시시콜콜하다. 억지로 따라간 2차 회식자리에서 교수님이 술에 취해 늘어놓는 일장 연설이랄까. 아니면 온갖 억지 비유 + 10번 넘게 들어본 농담을 끌어다 당연한 얘기를 멋있게 하는 목사님의 설교랄까. 누군가는 교수님 맞는 말 하신다며 끄떡끄떡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아멘 할렐루야를 외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조용히 딴 생각이나 하다가 내일 출근할란다.

  아, 글쓰기? 부록으로 딸려 나오는데, 별 내용은 없다. 진짜 부록이다, 앞서 말했지만 겉표지만 봐도 글쓰기 책이 아니다. 이 사람 말이 얼마나 엉터리냐면, 개요를 작성하지 말고 바로 글을 쓰란다. 왜냐, 언제든지 쓰다보면 무너지는게 개요이기 때문이란다. 언제든 무너지는 개요는 개요가 아니다. 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짱! 하고 보여야 개요다. 이 사람은 한 번도 개요를 작성한 적이 없는 것이다. '화룡점정', 혹은 '했읍니다'같이 맞춤법 틀리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는 매우 신선하고 고마운 충고를, 지금 만원이나 넘게 주고 파는 책에, 좋은 글 쓰는 방법이라며, 당당하게 적어놨다! 맙소사.

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그네가 어두운 밤길을 더듬고 있었다. 그때 먼 곳에서 등불이 반짝였다. 등불을 향해 반갑게 나아갔다.
  "아니, 이럴 수가!"
  등을 든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
  "당신은 장님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등불을 ..."
  "예,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앞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등불 덕에 사람들이 나와 부딪히지 않으니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요."

  글쓰기는 독자를 따뜻한 눈으로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독자는 빨간 펜 선생님이 아니다. 내 글을 재단하는 검열관이 아니다. 독자는 나와 한편이고 내 글쓰기의 참여자다. 같이 호흡하고 함께 공감하는 친구다. 일기를 쓸때 귀찮기는 해도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독자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를 과도하게 의식하면 두려움이 생긴다.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과하면 두려움이 된다. 두려움은 글쓰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내가 먼저 솔직해야 한다.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웃통뿐만 아니라 '빤스'까지 벗어라. 그래야 허위와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이 생생하고 자연스럽다. 글에 꾸밈이 없다. 글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이 찾아들게 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예외다. 솔직해선 안 된다. 그래서는 완하는 회사나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보기 좋은 사람은 흔치 않다. 읽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연출해서 보여줘야 하는 게 자기소개서다.
  독자를 잊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나의 글쓰기는 3단계다. 첫 번째, 준비 단계에서 철저히 독자를 염두에 둔다. 그들을 파악하고 연구한다. 두 번째, 쓰는 단계에서는 잠시 잊는다. 온전히 나에게 몰두해 쓴다. 이때는 독자를 잊고 자기 내면에 잠겨 잇는 것을 끌어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셉 너째, 고쳐쓰는 단계에서는 나 스스로 독자가 된다. 내가 독자가 돼서 내 글을 본다. 독자는 이렇게 나의 글쓰기와 함께 하는 존재다.
  독자를 배려하자. 배려는 자기를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이다. 거창한 것을 써서 멋있게 보이고 싶은 것은 자기를 중심에 둔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라고 한다. 그러지 말고 욕망하자. 욕심의 노예가 아니라 욕망의 주인이 되자. 글쓰기에서 욕망은 독자에게 전달할 좋은 내용을 찾고 싶은 마음이다. 또 그것을 좀 더 알기 쉽게 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나아가 독자의 가슴에 꽂히게 하려고 고민하는 열정이다. 이 모두가 자기가 아닌 독자를 중심에 둔 것이다. 책임감은 반응과 능력의 합성어다. 그러니까 타인에 대해 반응할 줄 아는 능력, 즉 독자에 대한 배려가 글 쓰는 사람의 책임감이다.

  글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그런 글은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자신 있게 써서 부담감을 주지 않는 게 독자에 대한 배려다. 자기가 많이 안다는 것을 글에 드러내면서 우쭐해하는 것도 배려가 아니다. 알기 쉽게 써서 그것을 단번에 이해한 독자가 우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황하게 써서 독자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역시 배려가 아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써서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배려다. 온갖 수식어와 수사법을 동원해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는 시도는 배려가 아니다. 느끼함으로 고문하는 일이다. 담담하고 소박하되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글쓴이가 감춰놓은 의도를 알아채는 기쁨을 주는 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잘 쓴 글은 내가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좋은 글은 독자의 마음에서 나온다. 좋은 글을 쓰고 싶거든 독자를 향해 '장님의 등불'을 먼저 들어야 한다.

 -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 저, 382p~385p에서.

  음... 이 글에는 독자를 배려해야 하는 당위성, 그리고 독자를 배려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 신뢰감이 들도록 쓰고, 담백하고 진솔하게, 친절하게 쓰란 거다. 당연한 내용을 너무 길게 적어논 거 아닌가. 그리고 20번은 들어본 것 같은데, 저 등불 얘기.
  완전히 똑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나라면 관련 내용을 이런 식으로 말하겠다.

  회사에서 글쓰기는 예술과 기술의 중간쯤에 있다. 예술은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을 만족시키는 방법이다. 예술적 글쓰기에 너무 빠지면 독자를 만족시키기 전에 자기를 만족시키는 글이 된다. 반면 기술적 글쓰기에 치우치면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무엇보다 쓰는 사람 스스로도 재미가 없어서 지치기 쉽다.
  회사에서의 글쓰기를 연마하려면 우선 기술적 글쓰기에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라.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만 기술은 누구나 연마할 수 있다. 흠 없는 문장들만 잘 연결해도 최소한 나쁜 글은 안 된다. 그리고 여기에 당신의 예술성을 충분히 담으면 좋은 글이 된다. 다만 당신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지는 마라. 무거운 오페라는 하지 말고 너무 가벼운 뽕짝도 하지 말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발라드를 불러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으면서 혼자 마음속으로 정리했던 한 꼭지를 풀어낸 것이다. 이 정도만 써도 충분한 것 같은데. 당연한 얘기를 길게 쓸 필요가 있나.

  굳이 글쓰기의 비결을 이 책에서 찾고 싶걸랑, 뒷부분 말고 오히려 앞 부분에서 비결을 찾아야 한다. 글쓰기 책이랍시고 앞쪽에 사내 정치를 줄줄이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이것이 이 사람이 글쟁이로 살아남은 방법이요, 다른 글쟁이보다 뛰어난 강점이기 때문이다. 강원국은 유시민이 아니다. 그가 이 글에서 직접 말한다, 글 잘 쓰는 '불효자' 말고 글 못 쓰는 '효자'가 되자고. 관계와 소통이 잘 되면 글솜씨도 필요없다는 것이 이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온, 글쓴이의 생생한 주장이다. 이것이 바로 김대중을 모시고 노무현을 모신 비결이다. 잘난 유시민은 절대로 못 하고 못난 강원국이는 잘 하는 거.

  부조리와 불합리한 생각, 전근대적인 권위의식과 일방적인 의사소통에 대해 유시민은 저항하고 싸우지만 강원국은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름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유시민은 완벽한 글쓰기가 필요하지만 강원국은 뭐.. 그렇게까지는 필요없다. 강원국은 그게 더 좋단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와 비이성적인 언행에 잘 맞추어야 서로 행복할 수 있단다.

  내가 신앙 서적을 안 읽는 이유가 있다. 성경에 몇 줄로 요약된 걸 책 한권에 풀어써놔서 지루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해했다는 결과를 얻고 싶음과 동시에 이해되는 과정을 즐긴다. 신앙서적은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그 이해되는 과정, 그 유희를 선물한다. 돈 주고서라도 이런 류의 유희를 한가하게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사업은 실력이기 전에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꼭 보라. 당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다.

온갖 정치 행위에 피곤하다면, 당신은 이딴 거 안 봐도 돼 ㅎㅎ 자기 할 일만 똑바로 하면 되지 뭘.


  구글북스에서 11,200원. 쟁반짜장 홍콩반점에서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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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재미없는 글 잘 쓰는 법

*누구나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문재(文才)'가 없는 '유전적 불운'을 한탄한다. 시나 소설이라면 그래도 상관이 없다. 하지마 문학작품이 아니라 생활 글쓰기나 논리 글쓰기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직업적 글쟁이로서 논리 글은 나름 수준 있게 쓴다고 인정받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괜찮은 시인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데 만족하며 산다. 아무나 시를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준 시인이 여럿 있다. 안도현 시인도 그런 사람이다. <너에게 묻는다>는 그런 작품 중에서 제일 짧은 것인데, 그 첫줄은 이렇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시인이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연탄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단군 할아버지가 한반도에 터를 잡은 이후부터 50여년 전까지, 몇넌 년 동안 우리는 나무를 태워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다.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조선 후기에 숲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의 약탈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의 야산은 거의 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농민들은 어린 나뭇가지와 낙엽까지 모두 긁어다 연료로 썼다.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생계형 도벌'을 한 것이다. 정부는 멀쩡한 숲을 통째로 베어 목재로 팔아치우는 '상업형 도벌'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우리는 숲이 생명력을 회복한 것은 연탄이 나무와 숲을 대체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1970년대에 들어 구벙이 열아홉 개 뚫린 연탄이 가정용 에너지원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1990년대에는 소득수준이 더 높아져 석유, 가스, 전기가 연탄을 밀어냈다. 20여 년 동안 주택가 골목 어디나 타고 남은 연탄재가 쌓여 있었다.
  무언가에 화가 났지만 화풀이할 곳이 달리 없는 사람들은 그 연탄재를 발로 찼다.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렸고, 주변에서는 혀를 찼다. '왜 연탄재를 차고 난리람? 먼지 날라면 사람한테 해롭잖아. 골목길도 지저분해지고' <너에게 묻는다> 첫 행에 이 생각을 이어 붙이면 이렇게 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부서진 연탄재 네가 치울 거냐.

  논리 글쓰기는 이런 것이다. 이 정도라면 나도 쓴다! 그런 생가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이런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어려울 게 없다. 그런데 시인의 상상력과 감성은 다른 곳으로 뻗어갔다. 그 연탄재가 한때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어리였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연탄이 제 몸을 불살라 내뿜은 열기로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허기진 가족을 위해 밥을 지었고 하루 일에 지친 몸을 달래었다. 그 뜨거움 위에서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고 늙은 부모를 모셨으며 소중한 딸, 아들을 키워냈다. 사랑도 열정도 헌신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널리고 널린 세상, 도대체 그 누가 겨울 골목길의 연탄재를 걷어찰 합당한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였던 안도현 시인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마침표도 쉼표도 느낌표도 없는 석 줄짜리 시를 쓴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던 전교조 교사들이 진심을 물라조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건 말 그대로 예술이다! 창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이렇게 쓸 수 있다고? 거짓말이다. 어머니 배에서 나올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뇌세포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우주만큼이나 복잡하고 오묘한 연결망과 정보처리 시스템을 만든 어린 시절에 형성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특별한 감성과 언어 감각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런 시를 쓸 수 있다. 수 십 년 글쓰기로 살아온 나는, 이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내가 시를 쓰지 못하는 사람임을 거듭 자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큰 불만을 느끼지 않고, 잘 쓸 수 있는 글을 쓰며 살았다. 20대 청년기는 소위 '선전선동(宣傳煽動)'을 위한 글쓰기로 보냈다. 그때 정부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세상에 대한 불만을 조장하는 것을 '선전'으로, 정부에 맞서 싸우라고 대중을 부추기는 것을 '선동'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전'은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고 '선동'은 용기를 퍼뜨리는 일이었다. 나는 이런 의미의 '선전선동' 사업을 벌이는 데 필요한 '불법유인물'을 만들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

  속았지? 안 속았나? 유시민이 쓴 거다 ㅎㅎ 내가 발췌한 이 문장에는 지금 리뷰하려고 하는 이 책의 의도가 정확하게 들어있다. 문학적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논리적 글쓰기는 요령을 알고 연습만 하면 누구든지 잘 쓸 수 있다. 는 게 이 책의 생각이고, 그 요령을 알려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더불어 위의 발췌문은 이 책의 특징을 고스란이 담고 있으니 위의 글이 마음에 든다면 얼른 구매해도 좋다.

*잡다한 수다가 한가득

  유시민이 실제로도 그런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책에서만큼은 말이 무진장 많은 수다쟁이 아저씨다. 절대 간단한 요약으로 설명하는 법 없이, 줄줄이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어쩌구 저쩌구 해가면서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다는 투다. 연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 대뜸 단군할아버지가 등장하고, 조선 후기의 인구 폭발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줄줄이 서사의 결론은 나는 안도현만큼 시는 못 써도 잘 먹고 잘 살았다. 는 간단한 것이다.
  어때, 그래도 재미있지 않나? 니가 연탄을 차면 주변에서 혀를 찬댄다. 딱딱한 문장 사이에도 유시민 나름의 흥미 유발을 섞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내가 제목에 글쓰기의 정석이 아니라 글쓰기의 열린교과서라고 써 놓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반대로 아 그래서 빨리 내가 필요한 글쓰기 묘수를 알려달라고! 하고 부추기는 성급한 독자는 지루할 지도 모르겠다. 호흡이 긴 이야기에 익숙치 않은 사람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템포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 꼭 문장 하나에 200자가 들어있어야 만연체가 아니다. 이렇게 정갈한 문장으로도 만연체가 가능하다는 사실, 유시민을 만나기 전에는 모를 거다.

*필요한 부분에서는 잠깐 스톱

  이따금 잘 된 문장과 잘못된 문장의 예시를 보여줄 때가 있다. 여기서는 갑자기 급공부모드로 돌아서야 한다. 책의 앞뒷장을 넘겨가며 꼼꼼이 비교를 해야 책값을 뽑을 수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은 이 유령에 대항하는 신성한 몰이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요것은 강유원이라는 사람이 옮긴 <공산단 선언> 이다. 이걸 유시민이 고친 것은 아래와  같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낡은 유럽의 모든 권력이,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한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여기서 요점은 운율이다. 아무래도 선언문이기 때문에 리듬감이 중요하다고. 글을 쓸 때도 말하듯이 쓰는 것이 좋댄다. 즉, 말로 읽어서 어색한 문체는 삼가라는 것.
  이걸 이해하려면 위 아래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기억에도 잘 남게 된다.

*글쓰기의 A to Z


차례

글쓰기가 두려운 그대에게

1. 논증의 미학

2. 글쓰기의 철칙

3. 책일기와 글쓰기

4. 전략적 독서

5. 못난 글을 피하는 법

6. 아날로그 방식 글쓰기

7. 글쓰기는 축복이다

8. 시험 글쓰기


차례만 훑어봐도 알듯이 글쓰기를 처음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논리에 대한 기본 개념, 설명문의 주요 특징, 독서를 통해 글쓰기를 향상시키는 방법 등 별의 별 내용이 다 들어있다. 논술시험을 코앞에 둔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 방법도 있고, 심지어는 '정신승리'를 주제로 한 내용도 들어있다. 아니, 트위터나 댓글논쟁에서 정신승리하는 방법을 다룬 건 아니고 ㅋㅋ 글쓰기가 싫어질 때 어떻게 스스로를 달래면서 글을 썼는가 하는 내용이다.

*블로그를 쓸 때, 유시민이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된다.

  요즘 글 쓰기의 트랜드는 딱 하나, 재미다. 여러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필력'을 논할 때, 그 기준은 같은 내용이라도 얼마나 재미있게 쓰느냐다. 유시민이 시키는 대로 글을 쓰면 그야말로 노잼이다. 문장을 끊을 줄 몰라서 못 끊는 경우를 빼고, 의도적으로 쓰는 만연체의 동기는 줄줄줄 이어지는 문장의 재미다. 위에 설명했듯이 유시민도 글의 재미를 위해 문장은 단순하지만 내용은 만연체나 다름이 없이 글을 썼다. 글이 재미있으려면 다양한 문장 구조가 튀어나와야 하고, 반전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문법과 맞춤법도 파괴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 그런 건 절대 안 알려주지~
  실생활에서 논설문을 써야 하는 상황은 주로 댓글이나 트위터로 논쟁을 할 때이다. 이런 경우에 승리하는 최고의 방법은 재미나게 써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것이다. 논증 불가능한, 그래서 사실상 논리가 아닌 내용도 상관이 없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되는 대부분의 문장은 촌철살인 유머다. 그런 공간에서 이 책의 가르침대로 글을 썼다가는 당신의 멘탈부터 붕괴될 것이다. 아무리 정리 정돈 잘 해서 논리를 펼쳐봐야 소용이 없고, 이건 벽에다 대고 헤딩하는 꼴이니까. 좋은 논설, 가장 설득이 잘 되는 논설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글이다. 이 쯤 되면 이미 문학과 예술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유시민이 얘기하는 요령들은 나쁜 글을 안 쓰는 요령은 될 수 있지만 좋은 글을 쓰는 요령은 못 된다. 좋은 글이 되려면 필연적으로 문학적 글이어야 한다.
  이 책에 있는 문장 하나 하나는 모두 이 책이 설명하는 원칙에 입각해서 쓰여 있다. 그래서 문장이 재미가 없다. 너무 깔끔하고 단정해서. 김어준이 쓴 책이 드럽게 산만해서 도저히 읽기가 힘든 수준이라면 유시민의 책은 아, 너무 밋밋해서 지루해. 그래, 이런식으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유시민처럼 글을 쓰면 유시민처럼 살게 되는 거 아닌지. ㅋㅋㅋ

*이 책 때문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도 꾸준히 글 많이 써서 멋진 글쟁이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단, 이 책의 저자가 글쓰기로 돈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자나. 글쓰기는 티끌 모아 태산 맞다. 이건 이 책의 주장인데, 나도 동의한다. 꾸준히 쓰다 보면 실력이 는다. 왠지 이렇게 블로그 하나 하나씩 포스팅하다보면 어느샌가 나도 글쓰기 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 읽고 나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 사람들 유시민이 시키는대로 글을 썼나 안 썼나 보게 된다. 나름의 잣대가 된 것이다. 평가의 기준이 생긴다는 건 어쨌든 실력이 좀 늘었다는 거 아닌가.
  나도 유시민처럼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라는 매우 반듯한 결말.

*구글북스에서 샀다. 얼마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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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 이상한 놈들 총집합


찌질한 위인전, 함현식, 위즈덤하우스. 난 구글북스에서 구매. 딴지마켓에서 구매하면 저자 사인을 해준단다.

책이다. 일단 초고는 인터넷에 다 올라왔으니 굳이 책을 안 사려면 이걸 읽어도 된다.


딴지일보에 연재된 기사를 다듬어서 책으로 냈는데, 확실히 글의 퀄리티는 책이 더 좋다.

책 제목부터 무슨 내용인지, 작가가 전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다, 이 아이디어가 그렇게 신선하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좀 뻔한 맛이 있다. 특히 열성 기독교인이었던 나로서는 이건 너무나 진부한 교훈. 그러나 회개하고 새사람이 된 삭개오의 얘기나 평생 간질을 달고 살았던 바울의 이야기, 한 때는 예수님을 전면으로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이런 류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이다. 우리에겐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여기에는 적절한 위로가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찌질한 위인전에는 특히나 다양한 타입의 위인들을 모아놓아서 MBTI 16개 유형은 아닐지라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가진 위인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되었는지 한 번 쯤 볼만하다.

1. 시인으로 살기 위해 자기를 고발한 남자, 김수영
2. '의존'함으로써 '생존'했던 화가, 빈센트 고흐
3. 철업는 가난뱅이, 이중섭
4. 완전한 사랑을 꿈꾼 남자, 리처드 파인만
5. 천재에서 괴물이 된 아웃사이더, 허균
외전 1 : 자기 안의 혼돈을 이기지 못한 악마, 파울 괴벨스
6. 평화주의에 가려진 보수주의자, 마하트마 간디
7. 관계의 파괴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8. 감오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은 무기수, 넬슨 만델라
9. 좌절과 도취를 반복했던 인격장애자, 스티븐 잡스
외전 2 : 비루한 요정,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상 위인 목록 중 가장 마지막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작가에게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위인이다. 그리고 첫 위인인 김수영은 이 책의 실질적인 프롤로그에 해당된다. 

자, 누가 나와 같은 단점을 가지고 있나? 웃기게도 찾아보면 모두 다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같다. 순간의 외로움과 감정적 메마름에 허덕이면서도 자아실현의 욕구는 충만했던건 고흐와 닮았고, 세상 모르고 살아왔떤 건 이중섭같다. 낭만을 꿈꾸었지만 결국 허무한 자기만족이었나 싶은 건 파인만과 닮았고, 중압감에 못이겨 끝내 지키려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린 건 허균과 같다. 진보를 외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보수적이고 야만적이었던 나를 발견한 경험은 간디와 허밍웨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상적 목표를 위해 현실에서 수많은 타협을 했었던건 만델라와 닮았고, 나의 독선은 스티븐잡스에 비할 바 충분히 된다.

이렇듯 내가 가진 단점을 다 가지고 있는 이 사람들은, 그런데 위인들이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힘들었다고 생각하니 위인이 더 위인처럼 보이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 한 명을 그래도 뽑자면 역시 빈센트 고흐.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어서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걸 견디기 어려워했다. 거절당한 후에는 당사자를 협박하고, 자기 자신을 자해하고, 그렇게 정신이 온전히 붙어 있지 못했다. 당시 유명한 화가이자 그의 잠깐 스승이었던 고갱이 그의 이상한 성격을 못 견디고 떠나려 하자, 칼로 그를 위협하다 정작 그 칼로 자기 귀를 자른 사건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귀 자른 자화상의 전말이다. 그는 권총 자살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딱히 처음부터 죽을 목적이라기보다, 자신에 대한 징벌의 의미로 복부를 권총으로 쏜 것이다.



그는 돈을 못 벌어서 항상 잘나가는 화가인 동생 테오에게 빌어먹어야 했는데, 문제는 돈을 그림 용구를 구입하는데만 쓴 것이 아니라 창녀들에게도 썼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네이트 판에라도 올라간다면 인간 말종 개쓰레기 취급을 당할테고, 그런 평가도 사실 당연하다. 이 책의 묘미는 전혀 미화할 수 없는 단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도저히 쉴드가 안 되는 치명적 인생의 잘못이 당신에게는 없다는 말인가? 또, 그런데 그것이 당신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겠는가?


본문 내용을 발췌해본다.

"자기 파멸에 대항하는 그의 투쟁이 빈센트에게 위대한 화가로서의 활동을 촉발했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의 이름은 빈센트. '빈센트 빌렘 반 고흐'박사. 테오의 아들이자 빈센트 반 고흐의 대자였던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데다가 정신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했떤 빈센트 반 고흐. 정신 착란과 자해를 반복했던, 죽고 나서야 인정받은 위대한 예술가.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할 때마다, 그래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괴로워햇던 빈센트 반 고흐. 평생에 걸친 자신의 광기와의 처절한 투쟁. 어쩌면, 우리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하지만 어쨌든 고흐는 한 평생 동생 등쳐먹고 살았던 쓰레기. 하지만 위대한 작품을 남긴 화가. ㅎㅎㅎ 내가 너무 냉정한 건가.

아무래도 인터넷 연재글인 만큼, 그리고 글의 구조가 뻔한 만큼, 앞부분에 파워가 많이 실리고 뒤쪽으로 갈 수록, 읽으면 읽을 수록, 힘이 좀 떨어지고 지루해지는 느낌이 있다. 특히 스티븐잡스는 그냥 자서전을 옮긴 수준이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부분은 누구나 공감할 수는 없을법한 개인의 감상과 감동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각 인물의 에피소드는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하고, 교훈은 뻔하지만 감동도 뻔한 건 아니다. 강추..까지는 아니고 살짝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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