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재미없는 글 잘 쓰는 법

*누구나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문재(文才)'가 없는 '유전적 불운'을 한탄한다. 시나 소설이라면 그래도 상관이 없다. 하지마 문학작품이 아니라 생활 글쓰기나 논리 글쓰기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직업적 글쟁이로서 논리 글은 나름 수준 있게 쓴다고 인정받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괜찮은 시인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데 만족하며 산다. 아무나 시를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준 시인이 여럿 있다. 안도현 시인도 그런 사람이다. <너에게 묻는다>는 그런 작품 중에서 제일 짧은 것인데, 그 첫줄은 이렇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시인이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연탄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단군 할아버지가 한반도에 터를 잡은 이후부터 50여년 전까지, 몇넌 년 동안 우리는 나무를 태워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다.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조선 후기에 숲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의 약탈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의 야산은 거의 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농민들은 어린 나뭇가지와 낙엽까지 모두 긁어다 연료로 썼다.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생계형 도벌'을 한 것이다. 정부는 멀쩡한 숲을 통째로 베어 목재로 팔아치우는 '상업형 도벌'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우리는 숲이 생명력을 회복한 것은 연탄이 나무와 숲을 대체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1970년대에 들어 구벙이 열아홉 개 뚫린 연탄이 가정용 에너지원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1990년대에는 소득수준이 더 높아져 석유, 가스, 전기가 연탄을 밀어냈다. 20여 년 동안 주택가 골목 어디나 타고 남은 연탄재가 쌓여 있었다.
  무언가에 화가 났지만 화풀이할 곳이 달리 없는 사람들은 그 연탄재를 발로 찼다.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렸고, 주변에서는 혀를 찼다. '왜 연탄재를 차고 난리람? 먼지 날라면 사람한테 해롭잖아. 골목길도 지저분해지고' <너에게 묻는다> 첫 행에 이 생각을 이어 붙이면 이렇게 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부서진 연탄재 네가 치울 거냐.

  논리 글쓰기는 이런 것이다. 이 정도라면 나도 쓴다! 그런 생가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이런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어려울 게 없다. 그런데 시인의 상상력과 감성은 다른 곳으로 뻗어갔다. 그 연탄재가 한때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어리였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연탄이 제 몸을 불살라 내뿜은 열기로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허기진 가족을 위해 밥을 지었고 하루 일에 지친 몸을 달래었다. 그 뜨거움 위에서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고 늙은 부모를 모셨으며 소중한 딸, 아들을 키워냈다. 사랑도 열정도 헌신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널리고 널린 세상, 도대체 그 누가 겨울 골목길의 연탄재를 걷어찰 합당한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였던 안도현 시인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마침표도 쉼표도 느낌표도 없는 석 줄짜리 시를 쓴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던 전교조 교사들이 진심을 물라조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건 말 그대로 예술이다! 창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이렇게 쓸 수 있다고? 거짓말이다. 어머니 배에서 나올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뇌세포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우주만큼이나 복잡하고 오묘한 연결망과 정보처리 시스템을 만든 어린 시절에 형성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특별한 감성과 언어 감각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런 시를 쓸 수 있다. 수 십 년 글쓰기로 살아온 나는, 이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내가 시를 쓰지 못하는 사람임을 거듭 자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큰 불만을 느끼지 않고, 잘 쓸 수 있는 글을 쓰며 살았다. 20대 청년기는 소위 '선전선동(宣傳煽動)'을 위한 글쓰기로 보냈다. 그때 정부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세상에 대한 불만을 조장하는 것을 '선전'으로, 정부에 맞서 싸우라고 대중을 부추기는 것을 '선동'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전'은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고 '선동'은 용기를 퍼뜨리는 일이었다. 나는 이런 의미의 '선전선동' 사업을 벌이는 데 필요한 '불법유인물'을 만들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

  속았지? 안 속았나? 유시민이 쓴 거다 ㅎㅎ 내가 발췌한 이 문장에는 지금 리뷰하려고 하는 이 책의 의도가 정확하게 들어있다. 문학적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논리적 글쓰기는 요령을 알고 연습만 하면 누구든지 잘 쓸 수 있다. 는 게 이 책의 생각이고, 그 요령을 알려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더불어 위의 발췌문은 이 책의 특징을 고스란이 담고 있으니 위의 글이 마음에 든다면 얼른 구매해도 좋다.

*잡다한 수다가 한가득

  유시민이 실제로도 그런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책에서만큼은 말이 무진장 많은 수다쟁이 아저씨다. 절대 간단한 요약으로 설명하는 법 없이, 줄줄이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어쩌구 저쩌구 해가면서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다는 투다. 연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 대뜸 단군할아버지가 등장하고, 조선 후기의 인구 폭발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줄줄이 서사의 결론은 나는 안도현만큼 시는 못 써도 잘 먹고 잘 살았다. 는 간단한 것이다.
  어때, 그래도 재미있지 않나? 니가 연탄을 차면 주변에서 혀를 찬댄다. 딱딱한 문장 사이에도 유시민 나름의 흥미 유발을 섞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내가 제목에 글쓰기의 정석이 아니라 글쓰기의 열린교과서라고 써 놓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반대로 아 그래서 빨리 내가 필요한 글쓰기 묘수를 알려달라고! 하고 부추기는 성급한 독자는 지루할 지도 모르겠다. 호흡이 긴 이야기에 익숙치 않은 사람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템포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 꼭 문장 하나에 200자가 들어있어야 만연체가 아니다. 이렇게 정갈한 문장으로도 만연체가 가능하다는 사실, 유시민을 만나기 전에는 모를 거다.

*필요한 부분에서는 잠깐 스톱

  이따금 잘 된 문장과 잘못된 문장의 예시를 보여줄 때가 있다. 여기서는 갑자기 급공부모드로 돌아서야 한다. 책의 앞뒷장을 넘겨가며 꼼꼼이 비교를 해야 책값을 뽑을 수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은 이 유령에 대항하는 신성한 몰이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요것은 강유원이라는 사람이 옮긴 <공산단 선언> 이다. 이걸 유시민이 고친 것은 아래와  같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낡은 유럽의 모든 권력이,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한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여기서 요점은 운율이다. 아무래도 선언문이기 때문에 리듬감이 중요하다고. 글을 쓸 때도 말하듯이 쓰는 것이 좋댄다. 즉, 말로 읽어서 어색한 문체는 삼가라는 것.
  이걸 이해하려면 위 아래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기억에도 잘 남게 된다.

*글쓰기의 A to Z


차례

글쓰기가 두려운 그대에게

1. 논증의 미학

2. 글쓰기의 철칙

3. 책일기와 글쓰기

4. 전략적 독서

5. 못난 글을 피하는 법

6. 아날로그 방식 글쓰기

7. 글쓰기는 축복이다

8. 시험 글쓰기


차례만 훑어봐도 알듯이 글쓰기를 처음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논리에 대한 기본 개념, 설명문의 주요 특징, 독서를 통해 글쓰기를 향상시키는 방법 등 별의 별 내용이 다 들어있다. 논술시험을 코앞에 둔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 방법도 있고, 심지어는 '정신승리'를 주제로 한 내용도 들어있다. 아니, 트위터나 댓글논쟁에서 정신승리하는 방법을 다룬 건 아니고 ㅋㅋ 글쓰기가 싫어질 때 어떻게 스스로를 달래면서 글을 썼는가 하는 내용이다.

*블로그를 쓸 때, 유시민이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된다.

  요즘 글 쓰기의 트랜드는 딱 하나, 재미다. 여러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필력'을 논할 때, 그 기준은 같은 내용이라도 얼마나 재미있게 쓰느냐다. 유시민이 시키는 대로 글을 쓰면 그야말로 노잼이다. 문장을 끊을 줄 몰라서 못 끊는 경우를 빼고, 의도적으로 쓰는 만연체의 동기는 줄줄줄 이어지는 문장의 재미다. 위에 설명했듯이 유시민도 글의 재미를 위해 문장은 단순하지만 내용은 만연체나 다름이 없이 글을 썼다. 글이 재미있으려면 다양한 문장 구조가 튀어나와야 하고, 반전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문법과 맞춤법도 파괴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 그런 건 절대 안 알려주지~
  실생활에서 논설문을 써야 하는 상황은 주로 댓글이나 트위터로 논쟁을 할 때이다. 이런 경우에 승리하는 최고의 방법은 재미나게 써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것이다. 논증 불가능한, 그래서 사실상 논리가 아닌 내용도 상관이 없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되는 대부분의 문장은 촌철살인 유머다. 그런 공간에서 이 책의 가르침대로 글을 썼다가는 당신의 멘탈부터 붕괴될 것이다. 아무리 정리 정돈 잘 해서 논리를 펼쳐봐야 소용이 없고, 이건 벽에다 대고 헤딩하는 꼴이니까. 좋은 논설, 가장 설득이 잘 되는 논설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글이다. 이 쯤 되면 이미 문학과 예술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유시민이 얘기하는 요령들은 나쁜 글을 안 쓰는 요령은 될 수 있지만 좋은 글을 쓰는 요령은 못 된다. 좋은 글이 되려면 필연적으로 문학적 글이어야 한다.
  이 책에 있는 문장 하나 하나는 모두 이 책이 설명하는 원칙에 입각해서 쓰여 있다. 그래서 문장이 재미가 없다. 너무 깔끔하고 단정해서. 김어준이 쓴 책이 드럽게 산만해서 도저히 읽기가 힘든 수준이라면 유시민의 책은 아, 너무 밋밋해서 지루해. 그래, 이런식으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유시민처럼 글을 쓰면 유시민처럼 살게 되는 거 아닌지. ㅋㅋㅋ

*이 책 때문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도 꾸준히 글 많이 써서 멋진 글쟁이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단, 이 책의 저자가 글쓰기로 돈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자나. 글쓰기는 티끌 모아 태산 맞다. 이건 이 책의 주장인데, 나도 동의한다. 꾸준히 쓰다 보면 실력이 는다. 왠지 이렇게 블로그 하나 하나씩 포스팅하다보면 어느샌가 나도 글쓰기 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 읽고 나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 사람들 유시민이 시키는대로 글을 썼나 안 썼나 보게 된다. 나름의 잣대가 된 것이다. 평가의 기준이 생긴다는 건 어쨌든 실력이 좀 늘었다는 거 아닌가.
  나도 유시민처럼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라는 매우 반듯한 결말.

*구글북스에서 샀다. 얼마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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