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글쓰기 - 사내정치로 이루는 유토피아



강원국이란 사람이 지었다. 대우에서 꽤 오랜 시간 일했었고, 무엇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대통령의 글쓰기란 책이 너무나 유명하고 잘 팔렸다. 잘 팔리는 김에 속편을 낸 것이다.

  강원국 스스로 말했다, 대통령의 글쓰기가 잘 팔리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대통령을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원래는 책을 사볼 생각이었는데, 이 말을 듣자 왠지 책을 다 읽은 기분이 들었다. 노무현에 대해서야 뭐 워낙 잘 알기 때문이고, 또한 질리도록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을 골랐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인 줄 알고. 이 책에 대한 지은이의 서평도 약간 들어봤으면 좋을 뻔했다. 아니, 겉표지만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이런 실수는 안 할 뻔했다. 써 있잖아,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90가지 계책'. 글쓰기 책이 아니다.

  책속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단어, 그러나 이 책의 핵심 주제, 그것은 바로 '사내 정치'이다. 정치란 아랫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벌이는 행위기도 하지만, 윗사람이 잘 다스리기 위해 벌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저런 입장에서 회장부터 말단까지 회사의 각 사람들이 해야 할 올바른 정치의 길을 제시했다. 여기서 올바름의 기준은, '유토피아'다, 즉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얼마나 부합하는가. 이 '유토피아'란 단어는 대단히 오글거리니까, 좀 다른 말로 대체하자면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 정도 되겠다. 회장님에게 잘 보이는 방법과 같은 처세술이 어떻게 내 정신 건강을 이롭게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사내 정치'. 이 단어가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그 느낌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분이다. 정말 어땠냐고? 그냥 시시콜콜하다. 억지로 따라간 2차 회식자리에서 교수님이 술에 취해 늘어놓는 일장 연설이랄까. 아니면 온갖 억지 비유 + 10번 넘게 들어본 농담을 끌어다 당연한 얘기를 멋있게 하는 목사님의 설교랄까. 누군가는 교수님 맞는 말 하신다며 끄떡끄떡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아멘 할렐루야를 외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조용히 딴 생각이나 하다가 내일 출근할란다.

  아, 글쓰기? 부록으로 딸려 나오는데, 별 내용은 없다. 진짜 부록이다, 앞서 말했지만 겉표지만 봐도 글쓰기 책이 아니다. 이 사람 말이 얼마나 엉터리냐면, 개요를 작성하지 말고 바로 글을 쓰란다. 왜냐, 언제든지 쓰다보면 무너지는게 개요이기 때문이란다. 언제든 무너지는 개요는 개요가 아니다. 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짱! 하고 보여야 개요다. 이 사람은 한 번도 개요를 작성한 적이 없는 것이다. '화룡점정', 혹은 '했읍니다'같이 맞춤법 틀리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는 매우 신선하고 고마운 충고를, 지금 만원이나 넘게 주고 파는 책에, 좋은 글 쓰는 방법이라며, 당당하게 적어놨다! 맙소사.

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그네가 어두운 밤길을 더듬고 있었다. 그때 먼 곳에서 등불이 반짝였다. 등불을 향해 반갑게 나아갔다.
  "아니, 이럴 수가!"
  등을 든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
  "당신은 장님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등불을 ..."
  "예,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앞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등불 덕에 사람들이 나와 부딪히지 않으니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요."

  글쓰기는 독자를 따뜻한 눈으로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독자는 빨간 펜 선생님이 아니다. 내 글을 재단하는 검열관이 아니다. 독자는 나와 한편이고 내 글쓰기의 참여자다. 같이 호흡하고 함께 공감하는 친구다. 일기를 쓸때 귀찮기는 해도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독자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를 과도하게 의식하면 두려움이 생긴다.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과하면 두려움이 된다. 두려움은 글쓰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내가 먼저 솔직해야 한다.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웃통뿐만 아니라 '빤스'까지 벗어라. 그래야 허위와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이 생생하고 자연스럽다. 글에 꾸밈이 없다. 글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이 찾아들게 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예외다. 솔직해선 안 된다. 그래서는 완하는 회사나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보기 좋은 사람은 흔치 않다. 읽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연출해서 보여줘야 하는 게 자기소개서다.
  독자를 잊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나의 글쓰기는 3단계다. 첫 번째, 준비 단계에서 철저히 독자를 염두에 둔다. 그들을 파악하고 연구한다. 두 번째, 쓰는 단계에서는 잠시 잊는다. 온전히 나에게 몰두해 쓴다. 이때는 독자를 잊고 자기 내면에 잠겨 잇는 것을 끌어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셉 너째, 고쳐쓰는 단계에서는 나 스스로 독자가 된다. 내가 독자가 돼서 내 글을 본다. 독자는 이렇게 나의 글쓰기와 함께 하는 존재다.
  독자를 배려하자. 배려는 자기를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이다. 거창한 것을 써서 멋있게 보이고 싶은 것은 자기를 중심에 둔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라고 한다. 그러지 말고 욕망하자. 욕심의 노예가 아니라 욕망의 주인이 되자. 글쓰기에서 욕망은 독자에게 전달할 좋은 내용을 찾고 싶은 마음이다. 또 그것을 좀 더 알기 쉽게 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나아가 독자의 가슴에 꽂히게 하려고 고민하는 열정이다. 이 모두가 자기가 아닌 독자를 중심에 둔 것이다. 책임감은 반응과 능력의 합성어다. 그러니까 타인에 대해 반응할 줄 아는 능력, 즉 독자에 대한 배려가 글 쓰는 사람의 책임감이다.

  글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그런 글은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자신 있게 써서 부담감을 주지 않는 게 독자에 대한 배려다. 자기가 많이 안다는 것을 글에 드러내면서 우쭐해하는 것도 배려가 아니다. 알기 쉽게 써서 그것을 단번에 이해한 독자가 우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황하게 써서 독자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역시 배려가 아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써서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배려다. 온갖 수식어와 수사법을 동원해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는 시도는 배려가 아니다. 느끼함으로 고문하는 일이다. 담담하고 소박하되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글쓴이가 감춰놓은 의도를 알아채는 기쁨을 주는 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잘 쓴 글은 내가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좋은 글은 독자의 마음에서 나온다. 좋은 글을 쓰고 싶거든 독자를 향해 '장님의 등불'을 먼저 들어야 한다.

 -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 저, 382p~385p에서.

  음... 이 글에는 독자를 배려해야 하는 당위성, 그리고 독자를 배려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 신뢰감이 들도록 쓰고, 담백하고 진솔하게, 친절하게 쓰란 거다. 당연한 내용을 너무 길게 적어논 거 아닌가. 그리고 20번은 들어본 것 같은데, 저 등불 얘기.
  완전히 똑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나라면 관련 내용을 이런 식으로 말하겠다.

  회사에서 글쓰기는 예술과 기술의 중간쯤에 있다. 예술은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을 만족시키는 방법이다. 예술적 글쓰기에 너무 빠지면 독자를 만족시키기 전에 자기를 만족시키는 글이 된다. 반면 기술적 글쓰기에 치우치면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무엇보다 쓰는 사람 스스로도 재미가 없어서 지치기 쉽다.
  회사에서의 글쓰기를 연마하려면 우선 기술적 글쓰기에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라.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만 기술은 누구나 연마할 수 있다. 흠 없는 문장들만 잘 연결해도 최소한 나쁜 글은 안 된다. 그리고 여기에 당신의 예술성을 충분히 담으면 좋은 글이 된다. 다만 당신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지는 마라. 무거운 오페라는 하지 말고 너무 가벼운 뽕짝도 하지 말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발라드를 불러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으면서 혼자 마음속으로 정리했던 한 꼭지를 풀어낸 것이다. 이 정도만 써도 충분한 것 같은데. 당연한 얘기를 길게 쓸 필요가 있나.

  굳이 글쓰기의 비결을 이 책에서 찾고 싶걸랑, 뒷부분 말고 오히려 앞 부분에서 비결을 찾아야 한다. 글쓰기 책이랍시고 앞쪽에 사내 정치를 줄줄이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이것이 이 사람이 글쟁이로 살아남은 방법이요, 다른 글쟁이보다 뛰어난 강점이기 때문이다. 강원국은 유시민이 아니다. 그가 이 글에서 직접 말한다, 글 잘 쓰는 '불효자' 말고 글 못 쓰는 '효자'가 되자고. 관계와 소통이 잘 되면 글솜씨도 필요없다는 것이 이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온, 글쓴이의 생생한 주장이다. 이것이 바로 김대중을 모시고 노무현을 모신 비결이다. 잘난 유시민은 절대로 못 하고 못난 강원국이는 잘 하는 거.

  부조리와 불합리한 생각, 전근대적인 권위의식과 일방적인 의사소통에 대해 유시민은 저항하고 싸우지만 강원국은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름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유시민은 완벽한 글쓰기가 필요하지만 강원국은 뭐.. 그렇게까지는 필요없다. 강원국은 그게 더 좋단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와 비이성적인 언행에 잘 맞추어야 서로 행복할 수 있단다.

  내가 신앙 서적을 안 읽는 이유가 있다. 성경에 몇 줄로 요약된 걸 책 한권에 풀어써놔서 지루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해했다는 결과를 얻고 싶음과 동시에 이해되는 과정을 즐긴다. 신앙서적은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그 이해되는 과정, 그 유희를 선물한다. 돈 주고서라도 이런 류의 유희를 한가하게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사업은 실력이기 전에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꼭 보라. 당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다.

온갖 정치 행위에 피곤하다면, 당신은 이딴 거 안 봐도 돼 ㅎㅎ 자기 할 일만 똑바로 하면 되지 뭘.


  구글북스에서 11,200원. 쟁반짜장 홍콩반점에서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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