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행복이란 이상한 만족감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차와 관련해서 별 것 아닌 것들로부터 큰 만족을 느끼곤 하는데, 차량 튜닝, 차량 용픔, 하여튼 차와 관련된 여러 산업들이 성행하는 것을 보면 차가 사람에게 그렇게 중요한가 의문이 생긴다. 특히 나, 본인은 출퇴근 시간이 다 합쳐서 하루에 30분도 안 된다. 그 짧은 시간에 느껴지는 만족감을 위해 별의 별 짓을 다 하는 걸 보면 그게 그렇게 좋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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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즐거운 오르가즘도 10분을 넘기기는 쉽지 않은데, 그 10분을 위해서 굉장한 투자를 하지 않나? 사람은 밥만 먹곤 못 산다. 비록 짧게 스치는 소소한 기쁨이라도 그 기쁨 때문에 살 수 있다.
CT200h, 내 차는 하이브리드라서 아침에 추우면 온도를 올린답시고 욍욍거리면서 공회전을 한다. 이게 마음에 안 들어서 시작된 방음 작업이 대시보드 방음, 그리고 실내 바닥, 도어 방음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공 과정을 사진으로 보면 이렇다. 대시보드 방음은 진작에 했고, 이번에 실내바닥, 도어 방음을 마친 것이다.
이하는 업체 사장님께 부탁해서 얻어온 사진인데,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문짝(전문용어로 도어)의 경우는 폼을 먼저 쏴서 코팅부터 한다. 그 다음은 똑같다.
사실 작업 내역은 설명을 들었어도 잘 모른다 ㅋㅋ 대충 사진 보면서 이런 식인가 추측할 뿐... 과정은 어느 업체든 다 비슷할 것이다. 다만 복잡한 차량 내부를 얼마나 꼼꼼하게 살펴볼 것인가에 작업 성패가 달렸다.
하여튼 틴팅까지 3일이나 걸렸는데, 사장님도 결과를 궁금해하고 나도 너무 궁금해서 일 끝나고 밤중에 고속도로까지 나가서 신나게 달리고 왔다.
소음이란 건 사실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의 청각은 워낙 부정확하고 주관적이라서 어느 정도의 소음 감소는 티도 안 난다. 소리가 아예 안 들리면 모를까, 작게 들린다면 그것도 어쨌든 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작아졌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작은 소리는 그 나름대로 또 거슬리기 때문에 소리가 작아졌다고 해서 만족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소리가 몇 퍼센트 감소했네 라고 하는 표현도 다 주관적이다. db로 소음을 측정하지 않는 이상 다 똑같다.
이 때 객관적인(?) 테스트 방법이 있다. 바로 음악을 트는 것이다. 작은 불륨부터 시작해서 음악이 제대로 들릴 정도까지 불륨을 키워보면 지금 소음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알 수 있다.
결과만 먼저 얘기하자면, 160km/h 로 달렸을 때, 보통 내가 듣던 음량 수치(차에 표시되는 단순 숫자)가 30-35였는데, 오늘은 23만 되도 만족스럽게 음악이 다 들렸다. 이게 어느 정도냐? 작업 전에는 귀가 살짝 아플 정도로 음악을 틀어야 했는데, 작업 후에는 그냥 평소 시내 주행하듯 소리를 키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업의 특성상 고음이 가장 잘 방어가 되고 저음은 어떻게든 뚫고 들어오는데, 마치 터널 지날 때 외압에 의해 귀가 멍멍해진 것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침을 몇 번이나 삼켰다. 마치 귀가 멍멍해진 것처럼 소리가 둔탁해졌다.
당연히 소리가 다 없어지지는 않는다. 들리는 소리는 여전히 들린다. 음악 다 끄고 가만히 들어보면 여전히 소리는 거슬린다. 다만 현저히 작아졌고, 그게 종류별로 다른데
노면/바퀴 : 기분 상 반 이하로 감소했다. 아마 실제로는 (음악 테스트 결과처럼) 더 작아졌을 것이다. 이 부분은 아스팔트 컨디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거친 노면을 달릴 때 거친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데, 다른 굵직한 소음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거친 굉음이 줄어드니, 레이싱 경기에서 들릴법한 고음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람소리 : 노면 소음이 줄어드니 오히려 시원하게 잘 들린다 하하 옆에 지나가는 차 소리가 아주 생생하다. 창문 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소리, 천장을 스치는 소리들은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엔진소리 : 상당히 많이 개선되어 굵은 저음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최소한 엔진이 동작하고 있다는 정도만 들리는 수준이다. 아침의 공회전 소리는 어떻게 되었는가? 여전히 들리긴 하는데 시끄러운 느낌이 사라지고 그냥 울리는 수준. 하여튼 엔진 소리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방음이 필요없게 됐다.
결론 : 1. 큰 소리가 줄어든다 2. 다른 종류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린다...
3. 그리고 음악 소리가 달라진다?
작업 후 음악을 틀어보니 음질이 달라져있다. 스피커가 들어있는 문에도 전부 흡음재를 넣었으니 저음이 더 단단하게 들리려나? 그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상하게 튀던 피크들이 다 평탄하게 되었다. ??왜? 주파수특성이 이렇게 달라질 줄 알았으면 미리 정확하게 테스트를 해두는 건데....
하여튼 작업 전 내 느낌으로는 보컬의 끝단을 강조하는 2kHz살짝 아래 부근 그리고 3.5kHz부근 그리고 또 4-5kHz 부근 또 여기 저기.. 중고역대에서 피크와 딥이 반복되고, 이게 너무 거슬려서 아예 고음을 다 낮추고 다녔는데, 이 찌글찌글한 주파수 응답이 다 펴진 것이다. 왜 그럴까?
도어 방음을 하면서 15cm이하의 공간을 다 메워버렸을 건데, 아마 여기서 중고역대의 공명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서 소리속도를 340m/s로 했을 때, 17cm공간에서 2kHz의 공명이 일어난다. 그 반인 8.5cm 크기에서는 4kHz 대역의 공명이 존재한다. 문짝 하나 하나는 전부 내부 공간이 비어있기 때문에 악기 역할을 하는데, 이런 곳에서 그동안 특정 주파수 대역을 증폭시켰던 것이고, 이 부분이 해결된 것이 아닐까? 이 분석은 순전히 본인 뇌피셜이긴 하다.
또 체감할 수 있는 건 저음역대가 오히려 잘 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60hz 이하 초저역대가 더욱 생생하게 들린다. 생생할 뿐 아니라 크게 들린다. 이건 또, 왜??? 흡음재가 저음역대의 응답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서 소리가 퍼지지 않고 깔끔하게 들리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하고 뇌피셜을 돌려본다. 저음역대에 존재하던 일정 주파수대역의 피크 또한 사라졌다. 전에는 프로미스9의 dm을 들으면 베이스 코드가 바뀔 때마다 음량이 다 달랐는데 (... ) 그 현상이 이제는 없다.
저음이 크게 들리는 이유는 중고역이 내려앉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량 내부 eq로 중음을 올려주고 저음을 내려주니 거의 평탄한 소리가 되었다. 까랑까랑한 중고역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이게 뭐 의도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그저 충실하게 공명이 일어날만한 공간을 전부 흡음재로 메꿨을 뿐.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쓸데없는 공명이 다 사라져서 괴상한 주파수 응답이 평탄하게 바뀌었다, 야호! 이 부분은 차마다 다를 것이라서 참고만 하시길~ 하여튼 소리가 변한다는 것.
그리고 소소하게 달라진 점... 문 닫는 소리가 이뻐졌다... 영화관에서 듣는 것처럼 근사하게 촵!
작업은 대구의 해온모터스에서 했다. 작업 내용을 일일이 사진으로 남겨서 설명해주는 것도 너무 친절한데, 오늘 나를 감동시킨 건 따로 있다.
나 : 3일 동안이나 작업하시느라고 고생 많으셨네요.
사장님 : 별 말씀을요, 재미있게 했습니다.
쇠가 보이는 모든 곳에 패드를 붙이고, 공기가 들어있는 모든 공간을 흡음재로 메꾼다, 이 꼼꼼한 작업을 본인 차를 튜닝하는 것처럼 즐겁게 했다는 뜻... 이보다 작업에 성실한 태도가 있겠는가?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많은데, 이럴 때면 또 사는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