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할머니 설 차례상


할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지내는 차례이다.

할아버지는 결혼을 두 번 했고 첫번째 할머니로부터 5남매, 두번째 할머니로부터 2형제를 낳았다. 우리 아버지는 그 2형제 중에서 맏이이다.

큰 할머니는 거의 평생을 혼자 살았고, 할아버지는 우리 할머니와 같이 7남매를 키웠다. 할머니는 7남매 키우느라고 하루종일 일하고 도시락 싸고 죽을 뻔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나랑 같이 술을 마시면서 옛날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때마다 큰 형들 도시락 싸느라고 작은 애들 울고 보채는 거를 매정하게 대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했다.

7남매는 다들 양반이라 이복형제들끼리도 사이좋게 잘 지내는 모양이다. 한 번도 싸운 것을 본 적도 없고 싸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그저 서로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 뿐이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큰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할아버지, 큰할머니 제사 지낼 때, 온 친척이 다 모였었다. 그런데 작은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나니 거기 못 낀단다. 참으로 섭섭하여, 키워준 사람 정은 없는가? 우리는 큰할머니 제사때마다 절을 했는데? 그렇게 생각되면서도 우리 작은 할머니가 이복 형제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다정했는지 혹은 매정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쨌거나 그 형제들 마음 아무도 헤아릴 수 없으니 그냥 그렇구나 하는 수 밖에.

할아버지 제사는 저쪽에서 지내준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 제사를 지낼 사람은 두 형제밖에 없다. 그리하여 형제 둘이서 할머니만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됐다.

형제 중에도 맏이가 차례를 지내야 한다면서 작은 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차례 지내자고 했다. 아빠는 어떻게 차려도 상관없느냐? 나는 교회 다니는데 그냥 예배 드려도 상관없느냐? 참고로 작은 아버지는 절 다니는데, 우리보고 상관없단다. 그리하여 아빠는 설 전에 교회 목사님을 만나서 추도 예배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어봤다. 목사님 왈, 추도 예배는 아무것도 안 차리고 예배만 드려도 된다, 그런데 그것은 설을 보내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고, 가장 좋은 것은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 그것도 섬김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평생 해본적도 없는 차례상을 차릴 운명에 처하게 됐다.

할아버지와 관련해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가 있다. 할아버지는 말하자면 아주 절실한 유교 신자인데, 어느날 제사상에 피자를 손수 사오셔서 올려두셨다. 피자는 뭐 전이랑 비슷한가? 할아버지 말로는 조상님들도 요즘 머가 나오는지 드셔보면 좋댄다.

그 피를 모두가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일까. 아버지랑 나는 설 전날 저녁부터 밤 12시까지 룰루랄라 전을 부치며 차례상을 준비했다. 아빠는 대애애충~ 머~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밤도 안까고 대애충 슈퍼에서 맛밤을 사왔다. 곶감은 집에서 해놓은게 있어서 근사하게 올렸다. 접시는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일회용 접시를 올렸다. 다행히 할머니댁에 향 피울 제기는 있어서 가져왔다. 그래도 포는 어떻게 사왔네? 아니, 그래도 있을 건 있어야지~ 아빠는 머 대충 한다면서 대충 사왔나보다. 대충 탕도 끓이고 전도 6가지나 부치고 남자 둘이서 할 건 다 했네 그래도.

우리집 제사는 엄숙하지가 않다. 제례를 지내면서도 형제들끼리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낄낄대기 일쑤이다. 작은아버지가 절차가 어떻게 되냐고 나한테 물어본다. 나보고 공부를 하란 것인가? 하여튼 나는, 어째 30년동안 교회 다니던 사람한테 물어봅니까~ 하고 폰을 열어서 대충 검색해본다. 에~~ 인제 여덟번째 사신입니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빠가 냉큼 절을 시작한다. 작은아버지가 멍때리고 보다가 아 이거 같이 하는겨? 그제서야 다같이 두 번 절을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감나라 배나라 까르보나라 하는 사람들 참 많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여러 안 좋은 케이스 중에서 가장 안 좋은 경우가 제사상에 참견하는 일이다. 이 개빡치는 말참견은 얼마나 유구한 전통이 있는 말참견이던지, 속담까지 있는 거 아니겠나. 제사는 당연히 지역마다 집안마다 다른 법이다. 형식도 다르거니와 분위기도 다르고 집안 사정도 제각각이다.

제사를 잘 지내야 집안이 잘 된다? 집안이 잘 되면 벌써 제사 안 지내고 해외여행 갔다. 우리 할머니가 우리 잘 되게 해준다고? 아이고 할머니나 잘 지내쇼~ 잘 되려고 제사 지내는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그저 보고 싶은 할머니 죽어서도 잘 모시고 싶은 마음 뿐이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나한테 했던 말은 추운데 출근 어떻게 햐~ 였다. 거 차 타고 가는데 춥기는~ 온갖 걱정 다 머리에 싸매고 그렇게 가셨다.

덩그러니 사진으로만 남았다는 말, 차례상을 보니까 또 실감이 나서. 할머니 보고 싶소.


0 comments:

댓글 쓰기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