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잘 해요? 멈춰! - 자살과 집단괴롭힘에 대하여

 가끔 마포대교에 설치됐었던 자살 방지 문구가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수영 잘 해요?'




이 문구가 상대를 조롱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는 나쁘지 않다. 우선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물에 빠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에 빠지면 춥고 물먹고 고생이 많다. '수영 잘 해요?' 문구는 이런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도발을 당해서 욱 하는 심정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살 생각을 잊게 만들 수 있다.

'뛰어봐 ㅋ 쫄보새끼'

'헬조선 경쟁자 제거www'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문구들도 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도발하기 위한 것들이다.


사실 그 밖의 문구들도 그냥 문장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바로 뛰어내리지 않고 뭐라도 생각할 수 있게끔 시간을 주는 것이다. 


나도 10대 20대때는 수도 없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가 서른 살 즈음에야 자살 생각을 덜 하기 시작했다. 짧게 봐도 그렇고 길게 봐도 그렇고 자살을 막는 것은 역시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바쁘게. 20대 시절에 우울증에서 벗어난 기간이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군대에 있을 때였고, 한 번은 동아리 회장으로 있던 때였다. 그 둘의 공통점은 바쁘게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너무 정신없고 바쁘니까 내가 바깥에서 왜 슬퍼했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잊게 되더라. 그리고 바쁘게 인생 살다 보니까 그냥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


어쩌면 멍청해진 것일 지도 모르겠다. 자살 생각과 더불어서 감정도 메마르고 실제로 머리도 나빠졌다. 예전에는 술술 쓰던 시나 글도 지금은 잘 쓸 수 없다. 어렸을 때는 작곡을 잘 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못 하게 됐다. 말도 많이 느려지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우울증에 걸리면 뇌가 가진 사고력의 반절을 잃게 된다는데, 우리의 뇌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치유하나보다.


이것 말고 자살을 막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종교이다. 10대와 20대를 종교적 사명으로 죽지 않고 억지로 살았다.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표본이 예수그리스도이고, 그래서 예수 따라서 산다고 하여튼 살았다. 살다 보니 살아남았다. 또한 돌이켜보면 그 때 옆에서 같이 교회다니던 친구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나를 돌봐주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나처럼 질척거리고 더러운 영혼과 말을 섞고 투정을 받아주고 감싸 안아줬던 것은 분명 종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종교의 위대함은 no cost에서 나온다. 아무런 댓가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서 뭘 알기나 하고 자살 예방 문구를 조롱하는 것일까? 자살하려는 사람을 단 1주일이라도 끈질기게 설득을 해본 적이 있을까? 자살을 막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지도 못하지. 우울과 상실의 깊이가 어떤 건지 모르지, 알 리가 없지.



한 가지 더 조롱받는 것이 있다.

'멈춰!'

주변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있을 때, 다같이 이렇게 외치라는 것이다.

방법이 우스꽝스러운 걸까? 아니면 그런 걸 누가 하느냐고 실효성을 말하는 것일까? 실효성은 없을 수 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왜 아무도 그렇게 안 하느냐고 따져야 옳다. 방법이 잘못되진 않았다.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 반에는 세 가지 종류만 있었다. 나, 날 괴롭히는 사람, 그리고 나 괴롭힘 당하는 걸 구경하는 사람. 실제로 괴롭힘을 당할 때, 누군가 멈춰! 했더라면.. 아니면 그거 그러지 말라고 내 편을 조금이라도 들어줬다면, 괴롭힘이 아예 멈추진 않았을지라도 나는 마음의 상처를 덜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괴롭힘 당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괴롭힘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 천지에 내 편이 없다는 것이다.


딱 한 명 기억나는 친구가 있다. 이진혁, 깜바. 내가 기억한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내가 괴롭힘 당할 때 한 번인가 야 야 그만 좀 해라~ 한 마디 해준 거. 평생 고마워한다. 얼마나 든든했던가.

사실은 나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내 친구 손명수가 옆반 애한테 멱살이 쥐어지고 협박을 당하는데, 나는 그냥 보고만 있다가 나중에 명수야 괜찮다 라며 위로를 해줬다. 지금의 나라면 바로 주먹을 날려서 옆반 새끼를 단 한 대라도 쥐어박았을 텐데. 그렇게 했어야 했다. 왜 나는 비겁하게 구경만 했을까. 그 때는 너무 몰랐어, 사람은 때리면 안 되는 줄 알았어. 절대 다른 사람은 안 때린다고.


용기를 낸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지혜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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